건립과 관련된 기록이 없기 때문에 이 산성의 건립 경위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통일신라 때 만들어졌으며, 주변에 있는 다른 산성들보다 규모가 훨씬 크고, 또 월등히 높은 산봉우리에 자리한 것으로 보아 장기간의 농성을 위해 쌓았던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익산 미륵산성은 해발 430m의 미륵산 정상부에서 산 중턱에 걸쳐 쌓은 전형적인 삼태기식 산성이다. 미륵산 정상부에서 동쪽으로 흘러내린 두 개의 능선을 에워싸면서 성이 만들어져 성내에 큰 계곡이 있는 서고동저(西高東低)의 형태를 띠고 있다. 성벽은 대부분 붕괴되었지만 일부 구간이 남아 있는데, 벽돌처럼 얇고 길쭉하게 가공한 돌을 이용하여 바른층쌓기 방식으로 성을 쌓은 것을 알 수 있다.
성문은 동문지와 남문지가 있다. 동문지에는 산성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옹성이 있으며, 좌우에 적대(敵台)도 남아 있다. 그밖에 9개소의 치성과 성내에 많은 건물지가 있다. 발굴 조사 결과, 건물지는 돌로 만든 석벽(石壁) 건물지로 확인되었는데, 이러한 석벽건물지는 보통 창고로 사용된 것이다.
익산 미륵산성은 고려시대 이래로 고조선의 준왕이 만들었다는 전설로 인해 기준성, 혹은 기준고성으로 불렸던 산성이다. 그렇지만 발굴조사 결과 통일신라 때의 산성으로 밝혀졌다. 익산 미륵산성은 익산 지역에 있는 산성 중 가장 높은 산봉우리에 세워졌으며, 성벽의 둘레도 가장 크다. 또한 성내에 우물과 계곡이 있고, 석벽 건물지가 있는 등 농성하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이 산성은 장기간의 농성에 대비해 만들어진 산성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