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미륵산성 ( )

건축
유적
국가유산
통일신라, 때 축조된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미륵산 정상부에 자리한 석성.
이칭
이칭
기준성(箕準城), 기준고성(箕準古城), 미륵산석성(彌勒山石城)
유적
건립 시기
통일신라
높이
3~4m
둘레
1,776m
면적
169,890㎡
소재지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시도지정문화재
지정 명칭
지정기관
전북특별자치도
종목
시도기념물(1973년 06월 23일 지정)
소재지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금마면 신용리 산124-1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익산 미륵산성은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금마면 신용리의 미륵산 정상부에서 중복(中腹)에 걸쳐 자리하고 있는 석성이다. 고조선의 마지막 왕 기준(箕準)이 쌓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기준성(箕準城)이라 부르기도 한다. 조선시대의 각종 기록과 고지도에도 기준성, 혹은 기준고성이라 표기되어 있다. 백제 무강왕(武康王)이 쌓았다는 기록도 있다. 그러나 축성법과 출토된 유물로 볼 때 통일신라 때 축조된 산성이다.

정의
통일신라, 때 축조된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미륵산 정상부에 자리한 석성.
발굴 경위 및 결과

익산 미륵산성(益山 彌勒山城)은 고려시대 이래로 고조선준왕이 성을 쌓았다는 전설이 내려 왔다. 그래서 기준성(箕準城) 혹은 기준고성(箕準古城)이라 불렀다. 그런가 하면 백제 때 성을 만들었다는 견해도 있었다. 그래서 산성의 성격을 밝히고, 성벽을 정비하고 복원하기 위해 동문지 주변, 남문지와 성내 건물지, 그리고 정상부의 평탄면과 서남 치성(雉城) 등을 조사하였다. 그 결과 동문지 주변에서 성문을 방비하기 위해 문을 둘러싼 옹성(瓮城)과 적대가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건립 경위

건립과 관련된 기록이 없기 때문에 이 산성의 건립 경위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통일신라 때 만들어졌으며, 주변에 있는 다른 산성들보다 규모가 훨씬 크고, 또 월등히 높은 산봉우리에 자리한 것으로 보아 장기간의 농성을 위해 쌓았던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형태와 특징

익산 미륵산성은 해발 430m의 미륵산 정상부에서 산 중턱에 걸쳐 쌓은 전형적인 삼태기식 산성이다. 미륵산 정상부에서 동쪽으로 흘러내린 두 개의 능선을 에워싸면서 성이 만들어져 성내에 큰 계곡이 있는 서고동저(西高東低)의 형태를 띠고 있다. 성벽은 대부분 붕괴되었지만 일부 구간이 남아 있는데, 벽돌처럼 얇고 길쭉하게 가공한 돌을 이용하여 바른층쌓기 방식으로 성을 쌓은 것을 알 수 있다.

성문은 동문지와 남문지가 있다. 동문지에는 산성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옹성이 있으며, 좌우에 적대(敵台)도 남아 있다. 그밖에 9개소의 치성과 성내에 많은 건물지가 있다. 발굴 조사 결과, 건물지는 돌로 만든 석벽(石壁) 건물지로 확인되었는데, 이러한 석벽건물지는 보통 창고로 사용된 것이다.

의의 및 평가

익산 미륵산성은 고려시대 이래로 고조선의 준왕이 만들었다는 전설로 인해 기준성, 혹은 기준고성으로 불렸던 산성이다. 그렇지만 발굴조사 결과 통일신라 때의 산성으로 밝혀졌다. 익산 미륵산성은 익산 지역에 있는 산성 중 가장 높은 산봉우리에 세워졌으며, 성벽의 둘레도 가장 크다. 또한 성내에 우물과 계곡이 있고, 석벽 건물지가 있는 등 농성하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이 산성은 장기간의 농성에 대비해 만들어진 산성으로 판단된다.

참고문헌

원전

『고려사』
『금마지(金馬志)』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와유록(臥遊錄)』

단행본

김선기·조상미, 『익산 미륵산성-동문지주변 발굴조사보고서』(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 2001)
김선기·조상미·심옥섭, 『미륵산성-건물지 및 남문지 발굴조사보고서』(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 2008)
전북문화재연구원, 『익산 미륵산성』(익산시,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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