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윤씨 녹우당 일원은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에 있는 조선 후기 해남윤씨 관련 주택이다. 녹우당은 고산 윤선도 고택으로 알려져 있다. 해남윤씨는 윤선도, 윤두서 등 조선 시대 인물들을 배출한 학문적·경제적 명문가이다. 녹우당 입구에는 당시에 심은 은행나무가 있다. 뒷산에는 500여 년 된 비자나무숲이 우거져 있다. 녹우당은 안채·사랑채가 ‘ㅁ’자형이고 행랑채가 있는 구조이다. 이곳에는 윤두서 자화상, 『산중신곡집』, 『어부사시사집』 등의 지정문화재 및 유물이 많다. 이 주택은 전남 지방에 현존하는 주택 중 가장 큰 규모이다.
녹우당은 일반에게는 고산 윤선도 고택으로 알려져있으나, 500여년 전 입향하여 본관을 얻은 어초은 윤효정으로부터 시작하여, 그 후 5대 윤선도(1587-1671), 8대 윤두서(1688-1715) 등 조선시대 인물들을 배출한 학문적, 경제적 명문가로 알려져 있다. 이 주택은 전남 지방에 현존하는 주택 중 가장 큰 규모로 1968년 12월 19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입구에는 당시에 심은 은행나무가 녹우당을 상징하고 뒷산에는 500여 년 된 비자나무숲(천연기념물, 1972년 지정)이 우거져 있다. 이곳에는 윤두서자화상(국보, 1987년 지정), 『산중신곡집』(보물, 1968년 지정), 『어부사시사집』 등의 지정유산과 3천여 건의 많은 유물이 보관되어 있다.
배치는 갑좌경향(甲坐庚向)으로 서향집이며, 동4택(東四宅-안방, 대문, 부엌이 북쪽, 동쪽, 남동쪽, 남동쪽 방향)에 속한다. 집터 뒤에는 덕음산을 두고, 앞에 안산(案山)으로 벼루봉과 그 바른쪽에 필봉이 자리잡고 있는 명당이다. 남동향으로 낸 솟을대문을 지나 사랑마당으로 들어서면, 전면에는 사랑채가 자리잡고 있고 서남쪽 담모퉁이에는 조그마한 연못이 있다.
사랑채는 침방 · 사랑방 · 대청이 一자로 늘어서고 전면에 차양을 달았다. 사랑채의 침방 옆에는 작은 마루를 두고 그 뒤쪽에 곳간을 두어 안채의 부엌 칸과 연속시키고 있다. 사랑채 뒤 동쪽으로 난 중문을 들어서면 안마당이 되고, 안채가 ㄷ자형평면을 이루면서 자리잡고 있다. 서쪽으로 부엌 · 안방 · 작은대청을 일렬로 늘어놓고, ㄱ자로 꺾이어 큰대청을 두었다. 다시 ㄱ자로 꺾이면서 방 · 함실아궁이부엌 · 방 · 곳간을 두어 중문까지 연결시켰다. 부엌문을 나서면 안방 동북쪽으로 장독대 · 닭장 · 광들이 있다.
사당은 안채 뒤 동쪽에 따로 쌓은 담장 속에 한 채가 있고 또, 담장 밖에 따로 고산사당과 어초은사당(漁樵隱祠堂)을 세웠다. 외측은 사랑마당 연못의 서쪽에, 내측은 외측으로부터 북쪽에 따로 떨어져 있다. 안채 뒤로는 대나무 숲이 우거진 후원이 있다. 솟을대문 앞쪽에는 노비집이 부엌과 방으로 ㄱ자평면을 이루면서 건축되어 있다.
이 주택의 구조는 민도리집 구조로, 안채는 화강석으로 마무리한 낮은 기단 위에 자연석 초석을 놓고 방주(方柱)를 세웠다. 가구(架構)는 4량가(四樑架)로 대들보를 두 개의 고주에 걸고 이 대들보 위에 판대공을 놓아 종도리를 받치고 있다. 또 앞면의 평주와 고주 사이에는 퇴보를 걸었다. 도리는 납도리이다. 처마는 홑처마이고 ㄷ자형 평면의 양측에 합각을 만든 맞배지붕형이다. 특히, 건넌방 사이에 있는 함실아궁이부엌 위에는 한층 지붕을 높인 작은 덧지붕(솟을지붕)이 있다.
사랑채의 구조도 안채와 비슷하여 화강석으로 마무리한 기단 위에 자연석 초석을 놓고 방주를 세웠으나 전면 툇기둥은 두리기둥을 세웠다. 가구는 4량가(四樑架)로 안채의 가구와 같다. 다만, 사랑채 앞에는 차양이 건축된 바 이의 지붕을 만들기 위하여 사랑채 앞에 따로 기둥을 세우고 이 기둥과 사랑채 기둥 사이에 보를 걸고, 그 위에 작은 기둥을 세워 차양구조의 대들보를 얹고 대공을 세워 종도리를 받치게 하였다.
이 건물은 효종이 윤선도에게 내려준 경기도 수원에 있던 집을 1668년(현종 9)에 이곳에 옮긴 것이다.
녹우당은 안채와 사랑채가 ‘ㅁ’자형으로 구성되고 행랑채가 갖추어져 조선시대 상류 주택의 형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