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탐라(耽羅).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郎平章事) 고조기(高兆基)는 그의 아들이다.
1057년(문종 11) 우습유(右拾遺)가 되었으나, 중서성에서 탐라 출신이라 간성(諫省)에 맞지 않는다고 요청하여, 다른 관직에 임명되었다.
1070년 동북로병마부사(東北路兵馬副使)에 임명되었고 이듬해 비서소감(秘書少監)으로 과거를 주관하여 75인을 시취(試取)하였다. 탐라고씨로서는 최초로 관직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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