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득인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후기 장례원사의를 역임한 무신.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본관
부령(扶寧)
주요 관직
장례원사
정의
조선후기 장례원사의를 역임한 무신.
개설

본관은 부령(扶寧). 형이 정로장군(定盧將軍) 김수인(金守仁)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무과에 급제,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에는 아우 김우인(金友仁)과 함께 강화도로 왕을 호종하였으며, 장례원사의에 임명되었다.

병자호란 때에는 아우와 함께 의병을 일으켜 공주의 차령(車嶺)에 이르러 소모사(召募使) 정홍명(鄭弘溟)과 합세하려 하였으나, 강화 체결의 소식을 듣고 통곡하며 돌아왔다.

참고문헌

『호남삼강록(湖南三綱錄)』
집필자
조계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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