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청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전기에, 대사간 등을 역임하다 낙향하였으나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왕의 호위를 자청한 문신.
이칭
덕형(德泂)
지재(止齋)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본관
경주(慶州)
출생지
전라도 부안
주요 관직
대사간
관련 사건
임진왜란
정의
조선 전기에, 대사간 등을 역임하다 낙향하였으나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왕의 호위를 자청한 문신.
개설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덕형(德泂), 호는 지재(止齋). 전라도 부안 출신. 아버지는 김치장(金致章)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53년(명종 8)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그 뒤 여러 고을의 수령을 역임하였는데, 가는 곳마다 선정을 베풀어 송덕비가 세워졌다.

대사간을 끝으로 관직에서 물러나 있던 중,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 왕이 피란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의주로 달려가 왕의 호위를 자청하였다. 죽은 뒤에 무덤 주위의 4리(里) 땅을 자손에게 특별히 하사하였다.

참고문헌

『선조실록(宣祖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호남삼강록(湖南三綱錄)』
집필자
문수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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