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백일(伯一), 호는 어부(漁夫). 아버지는 부사 성몽선(成夢宣)이다.
1522년(중종 17) 생원시에는 합격하였으나 이후 문과에는 급제하지 못하였다.
이조의 천거로 내시교관(內侍敎官)에 등용되어 상서원주부·공조좌랑을 거쳐 용인현령에 이르렀다. 관직을 물러나서는 공주·인천·용산(龍山) 등지에 정자를 세워 문인생활을 하면서 호를 스스로 ‘어부(漁夫)’라고 하였다. 시문과 글씨에 뛰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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