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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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 쌍계사지 장승 정면
영암 쌍계사지 장승 정면
불교
유적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덕룡산(德龍山)에 있었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백운이 창건한 사찰.
이칭
이칭
덕룡사(德龍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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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덕룡산(德龍山)에 있었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백운이 창건한 사찰.
내용

이 절은 854년(문성왕 16)에 백운(白雲)이 창건하였으며, 낭주(朗州)와 나주 사이의 국사봉(國師峰)과 덕룡산 사이에 있는 계곡에 있다고 하여 쌍계사라 하였다.

그 뒤 1065년(문종 18)에는 호연(浩然)이 중창하였고, 1244년(고종 31)에는 아국사(阿國師)가 중국 방장산으로부터 와서 중창하였는데 중창에 얽힌 설화가 전한다. 아국사는 삼재(三災)가 침범하지 않는 이곳에 절을 중창하기 위해서 절 앞에 있는 못을 메우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 못에 살고 있었던 용은 조화가 많았으므로 부적을 써서 못에 던졌다고 한다. 그날 밤 광풍과 우뢰를 동반한 비가 내렸으며, 이튿날 보니 산사태로 못이 저절로 메워져 있었으므로 쉽게 절을 중창하였다.

그는 용의 덕을 기리기 위해서 ‘덕룡사(德龍寺)’라고 하였다. 1463년(세조 9)에는 왕의 꿈에 한 신인(神人)이 나타나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다섯 글자를 써주면서, “이 책을 만들어 덕룡사에 비치하면 사직(社稷)이 튼튼하리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왕은 곧 19명의 신하에게 명하여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언해본으로 발간하도록 하였다. 그 뒤 이 절은 쌍계사로 바뀌었다가 폐허화되었다.

절터에는 현재 높이 183㎝의 대형 석주(石柱)와 괘불대(掛佛臺) 2개, 절 입구에는 2m 높이의 입석과 1986년 전라남도 민속자료로 지정된 쌍계사지 장승이 있다. 1900년대 초에는 귀부가 있는 호연대사의 비가 있었으나 일본인들이 옮겨갔으며, 6·25 직후에 삼층석탑도 옮겨갔다고 한다.

참고문헌

『영암군의 문화유적』(국립목포대학박물관, 1986)
『영암군향토지』(영암군향토지편저위원회,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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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김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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