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5년(인종 13) 잡직서령(雜職署令)으로 내시지후(內侍祗候) 정습명(鄭襲明) 등과 함께 전선을 이끌고 순화현(順化縣) 남강(南江)에서 묘청(妙淸)의 반란군을 막았다. 1147년(의종 1) 진봉사(進奉使)가 되어 금나라에 갔다가 이듬해 귀국하였다.
1149년 중서사인(中書舍人)을 거쳐 1151년 좌간의(左諫議)로서 친족인 김존중(金存中)의 사주로 기거주(起居注) 이원응(李元膺) 등과 더불어 내시낭중(內侍郎中) 정서(鄭敍)를 탄핵하여 동래에 유배시키게 하였다. 같은 해 문공원(文公元) 등과 함께 의종의 환자(宦者) 정함(鄭諴)의 합문지후(閤門祗候) 제수에 반대하였다. 같은 해 12월 어사대부(御史大夫)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