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정부(正夫), 호는 결청재(潔淸齋). 유익(柳益)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지의금부사 유공량(柳公亮)이다. 아버지는 창평현령 유훤(柳箮)이며, 어머니는 유대기(兪大祺)의 딸이다.
1651년(효종 2) 사마시를 거쳐, 1665년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678년(숙종 4)에 정언(正言)에 처음으로 부임하여, 그뒤 사서·지평(持平) 등을 지내고 다시 은퇴하였으며, 1680년 헌납으로 등용, 부수찬을 역임하였다.
이어 울산부사로 부임하여 탐학한 토호를 다스리고 어려운 송사를 잘 처결하였으며, 순창군수를 지냈다. 영의정 김수흥(金壽興), 좌의정 민정중(閔鼎重) 등의 천거로 오위장(五衛將)에 등용, 동부승지에 임명되었으나, 신병으로 부임하지 않았다. 1685년 좌승지에 이르렀다.
높은 학문·치적에 육예[六藝: 선비가 배워야 할 여섯가지 일로 예(禮)·악(樂)·사(射)·어(御)·서(書)·수(數)]가 뛰어나고, 성품과 행동이 청백하였다. 저서로는 『성능유의(成能遺義)』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