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회보(晦甫). 아버지는 감찰 유중광(柳重光)이다.
여러 번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낙방하였고, 음사(蔭仕)를 권하였으나 듣지 않았다.
1613년(광해군 5)에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서인으로 강등시키자 삼강(三綱)이 끊어졌다고 탄식하며 과거시험을 단념하고, 선산 밑에 집을 짓고 꽃과 대나무를 심고 독서로 세월을 보냈다.
1616년에 이이첨(李爾瞻)의 사주를 받아 해주옥사(海州獄事)를 일으켜 사위인 목사 최기(崔沂)가 투옥되자, 유찬도 연루자로 투옥되어 옥사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 뒤 사헌부지평에 추증되고, 이어 아들이 원종공신이 되자 이조참판에 재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