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의 군인이었는데, 궁예(弓裔)가 청주를 차지한 뒤 청주의 땅이 기름지고 호걸스러운 사람이 많아서 변란을 일으킬까 두려워 하여 이들을 섬멸하고자 하였다.
이로 인하여 애견(愛堅) 등 80여 인과 함께 죄없이 끌려가고 있었는데, 왕건의 명을 받은 청주 출신 한찬(韓粲) 총일(摠逸)에 의하여 918년(태조 1) 6월에 석방되어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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