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서흥(瑞興). 경주 출신. 명나라 환관(宦官) 윤봉(尹鳳)의 동생이다.
윤봉은 원래 우리나라 사람으로 이조판서 이빈(李彬)의 집에서 자라다가 중국 조정에 들어가게 되었고, 황제의 총애를 받아 우리나라에 사신으로 여러 차례 오게 되었다. 특히, 세종 때 금과 은의 세공(歲貢)을 면제받는 데 공로가 컸다.
1427년(세종 9) 윤봉의 요청에 의하여 대호군이 되고, 1429년 상호군을 거쳐 같은 해 금은세공의 면제와 관련하여 첨총제(僉摠制)를 제수받고 논과 밭 80결(結)을 받았다.
1431년 동지총제(同知摠制), 1432년 중추원부사에 오르고, 1439년 동지중추원사, 1446년 전라도병마도절제사, 1450년(문종 즉위년) 지중추원사에 이르렀다. 윤봉의 요청에 따라 여러 차례 중국에 내왕하였고, 윤중부의 아들 윤길생(尹吉生)도 윤봉이 양자로 삼은 뒤 자주 중국에 내왕하였다.
1456년(세조 2) 윤봉이 세조를 조선 국왕으로 인정하는 중국황제의 조칙(詔勅)과 고명(誥命)을 가지고 사신으로 왔을 때 서흥을 향관(鄕貫)으로 해줄 것을 왕에게 요청, 세조가 허락함으로써 서흥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고, 서흥윤씨의 시조가 되었다. 시호는 정평(靖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