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경가(景可). 관찰사 윤세림(尹世臨)의 후손이며, 윤청(尹淸)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윤민신(尹民新)이고, 아버지는 승지 윤길(尹日+吉)이다. 어머니는 이세량(李世良)의 딸이다. 김류(金瑬)에게서 수학하였다.
1624년(인조 2) 생원시에 1등으로 합격하였다. 1627년 정묘호란 때 왕을 강화까지 호종하였으며, 청의 위협으로 조정에서 화의하자는 주장이 강할 때 척화의 소(疏)를 올렸다.
이어서 윤황(尹煌)·윤지경(尹知敬)도 척화의 상소문을 올리니 삼윤(三尹)의 정기(正氣)라고 칭찬하였다. 1629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홍문관정자·승문원박사·봉상시직장을 역임하고, 1630년 사관(史官)으로 천거되었으나 반대파의 저지로 밀려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