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여(麻余)의 아들이다. 6세에 왕위에 올랐다. 즉위 후 곧 중국에서 위(魏)와 진(晉)이 교체되자, 진에 자주 사신을 보내어 조공을 하며 친선을 꾀하였다. 285년에 선비족(鮮卑族)의 모용외(慕容廆)가 부여를 쳐들어왔다.
의려는 모용 외의 침입을 막아내지 못하여 자살하고, 그 자제들은 옥저로 망명하였다. 이 때 부여는 모용 외에 의하여 국토가 짓밟히고 1만여명의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가 노예로 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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