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8년(고종 45) 3월 국자시에 합격하였다. 1274년(충렬 즉위년) 10월 왕이 원 공주를 영접할 때 사관은 임금의 모든 행동을 기록하는 자로서 단 하루라도 곁에 없어서는 안 된다는 승선 박항(朴恒)의 건의로 직사관(直史館)으로서 종행(從行)하였다. 1298년(충선 즉위년) 2월 총랑(摠郎)으로 충청도안렴사가 되었다. 일찍이 폐신(嬖臣) 차신(車信)이 나이가 50이 안된 흥왕사(興王寺)의 비(婢)의 면역(免役)을 흥왕사별감인 이원에게 청탁하였을 때 거절한 바 있었으며, 이로 인해 차신에게 구타당하였음을 왕에게 보고하여 차신을 처벌받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