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릉 ()

조선시대사
유적
조선 태조의 비 신의왕후 안변한씨의 능.
유적/고인돌·고분·능묘
양식
건립 시기
조선 전기
관련 국가
조선
관련 인물
신의왕후|태조
소재지
개성시 판문군
내용 요약

제릉(齊陵)은 조선 태조의 비 신의왕후 안변한씨의 능이다. 신의왕후는 조선 건국 전에 승하해 해풍군 치속촌에서 장사지냈다. 1392년 제릉에 봉릉되었으며, 1407년에 왕릉의 규모로 개수하였다. 제릉은 현재 북한의 개성시 판문군 지동에 있으며, 북한 보존급 유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정의
조선 태조의 비 신의왕후 안변한씨의 능.
건립 경위

신의왕후(神懿王后, 337~1391)는 조선 건국 전에 승하해 해풍군(海豐郡) 치속촌(治粟村)에서 장사를 지냈다. 1392년 조선이 건국되자 시호를 절비(節妃)로 높여 제릉(齊陵)에 봉릉되었으며, 1398년에 신의왕후로 추존되었다. 1407년부터 1408년까지 제릉을 개수하였는데 판공안부사(判恭安府事) 박자청(朴子靑, 1357~1423)이 난간석(欄干石), 돌사람 제작을 총괄하였다.

변천

제릉은 연경사(衍慶寺)라는 주1가 있었으며, 왕실에서는 노비와 토지를 내려보내 여러 차례 개축해 관리하였다. 특히 태종(太宗, 1367~1422, 재위 1400~1418)은 사재(私財)로 법회를 베풀어 어머니의 명복을 빌기도 하고, 해풍군 흥교사(興敎寺)의 탑을 연경사로 옮기기도 하였다.

형태와 특징

제릉은 상중하계(上中下階) 3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상단에는 주2과 난간석을 두른 봉분이 있고, 그 주변에 주3주4이 배치되어 있다. 봉분의 정면에는 주5이 있으며, 좌우에 주6이 있다.

중계 중앙에는 장명등(長明燈)이 있으며, 좌우에 주7주8, 하계에는 주9과 석마가 있다. 능강 아래에는 주10과 비각(碑刻)이 있다. 『 춘관통고(春官通考)』 에 따르면 제릉에는 주11, 주12, 제기고(祭器庫), 안향청(安香廳), 재실(齋室), 연못 등의 부속 시설이 있었으나 현재는 모두 없어졌다.

금석문

비각에는 1744년에 재건된 제릉 신도비(神道碑)와 1900년에 건립된 제릉 표석이 있다. 제릉 신도비는 1404년 태종이 건립하였는데 권근(權近, 1352~1409)이 비문을 짓고, 성석린(成石璘, 1338~1423)이 비문을 썼으며, 김첨(金瞻, 1354~1418)이 주13을 써서 화장사(華莊寺)의 옛 비석을 갈아 새겼다.

임진왜란 때 제릉 신도비가 파괴되어 1744년에 재건하였다. 1899년 신의왕후를 고황후(高皇后)로 높이고, 1900년에 표석을 건립하였다.

의의 및 평가

제릉은 사실상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조선왕릉으로 태조(太祖, 1335~1408, 재위 1392~1398) 건원릉(健元陵)보다 먼저 완성되어 조선왕릉 연구에 매우 중요하다.

제릉 돌거리 중 병풍석의 돌사람이 기린 모습의 머리 형태로 제작된 것이 특징이다. 제릉의 8각 장명등은 조선왕릉에서 가장 먼저 확인되는 8각 장명등으로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양주 회암사지 무학대사탑과 양식상 공통점이 있어 같은 장인들이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원전

『제릉신도비영건청의궤(齊陵神道碑營建廳儀軌)』
『춘관통고(春官通考)』

단행본

『조선왕릉 종합학술조사보고서Ⅰ』(국립문화재연구소, 2009)
주석
주1

능을 지키기 위하여 능 근처에 지은 절.    우리말샘

주2

능(陵)을 보호하기 위하여 능의 위쪽 둘레에 병풍처럼 둘러 세운 긴 네모꼴의 넓적한 돌. 겉에 12신(神)이나 꽃무늬 따위를 새긴다.    우리말샘

주3

왕릉이나 무덤 앞에 세워 놓은, 돌로 만든 양 모양의 조각물.    우리말샘

주4

왕릉이나 큰 무덤 주위에 돌로 만들어 세운 호랑이.    우리말샘

주5

넋이 나와 놀도록 한 돌이라는 뜻으로, 상석(床石)과 무덤 사이에 놓는 직사각형의 돌을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6

무덤 앞의 양쪽에 세우는 한 쌍의 돌기둥. 돌 받침 위에 여덟모 진 기둥을 세우고 맨 꼭대기에 둥근 대가리를 얹는다.    우리말샘

주7

능(陵) 앞에 세우는 문관(文官)의 형상으로 깎아 만든 돌. 도포를 입고 머리에는 복두(幞頭)나 금관을 쓰며 손에는 홀(笏)을 든 공복(公服) 차림을 하고 있다.    우리말샘

주8

왕릉 따위의 앞에 돌로 만들어 세워 놓은 말.    우리말샘

주9

능(陵) 앞에 세우는 무관(武官) 형상으로 만든 돌. 능 앞 셋째 줄의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하나씩 세운다.    우리말샘

주10

왕릉에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봉분 앞에 ‘丁’ 자 모양으로 지은 집.    우리말샘

주11

능(陵), 원(園), 묘(廟), 대궐, 관아(官衙) 따위의 정면에 세우는 붉은 칠을 한 문(門). 둥근기둥 두 개를 세우고 지붕 없이 붉은 살을 세워서 죽 박는다.    우리말샘

주12

나라의 제사를 맡아보던 관아.    우리말샘

주13

전자체(篆字體)로 쓴 현판이나 비갈(碑碣)의 제액(題額).    우리말샘

집필자
김민규(동국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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