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무과에 급제하고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카 최진립(崔震立)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언양·울산의 양군과 경주지역을 온전하게 지키는 전공을 세웠다.
그 공으로 훈련원정(訓鍊院正)이 되고 경상도우후(慶尙道虞候)를 지냈으며, 1597년 정유재란 때 다시 의거, 영천의 창암(倉巖) 싸움에서 전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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