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림(金起林)
1930년 니혼대학日本大學] 전문부 문학예술과를 졸업한 후 귀국하여 [조선일보사 사회부 기자로 입사, 뒤에 신설된 학예부 기자로 옮겼다. 1933년 김유정(金裕貞) · 이태준(李泰俊) 등과 구인회(九人會) 결성에 참가하고, 1936년에 재차 도일, 센다이(仙台)의 도호쿠대학[東北大學] 영문과에 입학, 1939년에 졸업했다. 졸업논문은 영국의 문예비평가인 리처즈(Richards, I. A.)론이었다. 귀국 후(1939) 조선일보사 기자로 복직, 학예부장을 역임했다. 1940년 『조선일보』의 강제 폐간으로 한때 실직했으며, 1942년 낙향하여 고향 근처의 경성중학교(鏡成中學校)의 영어 교사로 부임했으며, 영어 과목이 폐지되자 수학을 가르쳤으며, 이때의 제자에 시인 김규동(金奎東)이 있다. 1946년 1월 공산화된 북한에서 월남하였는데, 이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