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옹우묵』은 흔히 『송와잡설(松窩雜說)』의 이본으로 일컬어지고 있으나, 내용을 검토해 보면 두 책 사이에 합치되는 부분이 별로 없다. 이로 보아 두 책은 별본으로 간주하는 것이 옳을 듯하다.
원본은 현재 전하지 않으며, 이본으로 야사 총서인 『광사(廣史)』 소재본과 김려(金鑢)의 『한고관외사(寒皐觀外史)』 소재본, 도남(陶南) 조윤제(趙潤濟) 소장 『패림(稗林)』 소재본이 있다. 이 중 『광사』는 현재 그 행방을 알 수 없고, 2002년에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영인한 『한고관외사』 속에 『간옹우묵』의 상권 93화가 수록되어 있으며, 1969년에 탐구당(探求堂)에서 영인한 『패림』에는 『간옹우묵』의 상권 93화, 하권 43화가 수록되어 있다. 현전하는 『한고관외사』에는 『간옹우묵』 하권이 누락되어 있으나 『패림』 소재본과 비교해 볼 때, 『패림』은 『한고관외사』보다 시기적으로 늦게 제작되었고 내용과 형식 면에서 『한고관외사』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이로 보아 원래 『한고관외사』 속 『간옹우묵』은 상하 2권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이 책의 간행 경위에 대하여 담정(藫庭) 김려(金鑢)는 『담정유고(藫庭遺藁)』 권 11 「제간옹우묵권후(題艮翁疣墨卷後)」에서 “내가 몇 해 전에 시랑(侍郞) 한이중(韓頤仲)에게서 『송와잡설』 두 권을 구하여 그것을 베껴 『한고관외사』에 추가하였다. 올해 황성(黃城)에 와서 또 『간옹우묵』 4권을 시골 서당에서 구했는데 그 글자들이 『송와잡설』과 서로 출입이 있었다. 그래서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송와잡설』과 『간옹우묵』 가운데 어느 것이 본래의 이름인지 알 수 없었다. 본디 한 종의 책이며 애당초 서로 다른 책이 아니었음은 분명했다. 이에 『송와잡설』에는 실려 있지 않은 내용을 뽑아 두 권으로 정리하여 『한고관외사』에 추가하였다.”라고 하였다.
편찬 시기는, 내용 중에 저자가 만력(萬曆) 기묘년(己卯年, 1579)에 상경한 이야기와, 같은 해 성절사(聖節使)로 요동에 갔던 것, 이외에 임진왜란이 일어난 임진년(壬辰年, 1592)부터 병신년(丙申年, 1596)까지 목격한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저자 나이 75세 이후에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내용은 조선 전기와 중기 사회상을 보여주는 기사들이 많다. 임진왜란으로 인육(人肉)까지 먹을 정도가 된 세태나 관리들의 해이해진 기강을 비판한 일화나 사행 시 일원으로 북경에 다녀온 경험을 상세히 기록한 이야기는 조선 전기 사회상을 잘 보여준다. 또한 저자가 존경하는 인물이나 친구 혹은 직계 선조에 얽힌 일화나 당대의 문인들끼리 주고받은 시화(詩話), 조선시대 야사(野史) 등 상당히 다양하다. 이곡과 이색 등 자신의 가문과 관련된 일화를 다수 수록하여 가문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내었고 수신(修身), 치국(治國)에 관한 잡기(雜記)나 일반 민간 설화와 관련된 내용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이 자료는 조선 전기 사대부들의 생활상과 이들이 중국 사신으로 가면서 겪은 사행 풍습, 그리고 임진왜란의 생생한 모습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