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감찬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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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감찬전
강감찬전
고전산문
작품
1908년 우기선(禹基善)이 지은 강감찬 전기.
정의
1908년 우기선(禹基善)이 지은 강감찬 전기.
개설

1908년 일한주식회사(日韓株式會社)에서 단행본으로 간행하였다. 앞에 현채(玄采)의 한문으로 쓴 서(序)가 있다. 애국 계몽기에 다수 출현한 창작 전기류 가운데 하나이다. 국가의 위기를 당해 강감찬 같은 영웅이 출현해 외세를 물리칠 것을 바라는 작자의 영웅 사관에 입각해 지어진 것이다.

“태평을 구향한 인민이 전쟁의 용법을 어찌 알리요.”, “금일은 문(文)을 누이고 무(武)를 닦을 때”라는 구절들은 작자가 이 책을 저술할 당시의 상황을 암시하고 있다. 그리고 “천하에 총명한 인종 중에 우리 나라보다 더 나은 자가 없다.” 는 강감찬의 말을 통해 좌절에 빠진 우리 민족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려는 작자의 의도가 엿보인다.

내용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고려 초 공신 강궁진이 노년에 벼슬을 사양하고 고향에 돌아와 살던 중 태몽을 받고 얻은 아들이 곧 강감찬이다. 키가 작고 용모가 누추하나 천문지리와 병법에 통달했으며 금수도 그의 명에 순종하였다.

나이 35세에 장원 급제하고 한양판관으로 부임해 그 곳의 호환을 근절시켰고, 경주군수 재임 시 백성들을 불안하게 했던 개구리 울음소리를 제거하였다. 거란이 난을 일으킨 강조의 죄를 묻는다는 구실로 침입해 살상을 자행하자, 강감찬은 거란에게 항복할 것을 주장하는 당시 신하들에게 맞서 일단 화친을 청하면서 무력을 대비하였다.

거란의 소손녕이 정병 100만을 이끌고 재침하자, 강감찬이 원수가 되어 부원수 강민첨(姜民瞻)과 군인 20만 8300명을 거느려 뛰어난 전략으로 대승하고 개선하였다. 강감찬이 나이 칠십이 넘어 물러나기를 원하나 송나라의 사신이 와서 나라의 인물을 보고자 해서 왕의 간절한 부름을 받고 다시 입궐하였다.

강감찬을 본 송나라 사신은 “천문에 문곡성이 오래 보이지 않았는데 이곳에 있도다.”라고 하면서 문곡성이 하늘에서 죄를 입고 인세에 내려와 작은 키와 누추한 외모로 벌을 받게 하신 것이라 말했다 한다. 나이 84세에 죽었다.

의의와 평가

이 작품은 애국 계몽기에 나온 여타 역사·전기류와 달리 목차나 소제목이 없을 뿐만 아니라 구조·내용에 있어서도 조선 후기에 성행했던 영웅 소설의 특성을 많이 지니고 있어 한문의 전(傳)보다는 고소설에 더 가깝다.

자료에 있어서도 『고려사』 외에 설화·야사 등을 많이 인용해 독자의 흥미를 끌게 했으며, 다른 전기류의 영웅들에 비해 민중과 매우 밀착되어 있는 영웅상을 보여 주는 점이 주목된다.

참고문헌

『한국문학통사』4(조동일, 지식산업사, 1986)
『한국개화기총서』역사·전기소설(아세아문화사, 1979)
「대한제국의 문학(I)」(이혜순, 『대한제국연구』I, 이화여자대학교한국문화연구원,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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