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 후기 병자호란 당시 청군에 대적해서 싸운 의병장.
가계 및 인적 사항
주요 활동
당시 동계(桐溪) 정온(鄭蘊)이 상소를 올려 영창대군에 대한 처리가 잘못된 점을 밝혔다가 사죄(死罪)로 논해지자, 형인 강대수가 정온을 옹호하여 먼 곳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아버지 강익문도 유배되었으므로 강대적 역시 출사하지 않았고, 고향인 합천에 은거하면서 학문에 정진하고 후진 양성에 힘을 쏟았다.
여러 차례에 걸쳐 세마(洗馬)‧참봉(參奉)‧찰방(察訪) 등으로 기용되었으나 관직에 나가지는 않았고, 병자호란(丙子胡亂)(1636~1637) 때 의병을 일으켰다.
1637년(인조 15)에는 충(忠)과 효(孝)를 겸비하였다고 하여 동부승지(同副承旨)를 제수받았다. 1647년(인조 25) 1월 선공감(繕工監) 직장(直長)이 되었다. 같은 해 7월에는 장악원(掌樂院) 직장 조지맹(趙志孟)과 상환(相換)하여 자리를 옮기게 되었으나 아버지 강익문의 병환이 심하여 낙향하였다. 1673년(현종 14) 9월, 80세의 나이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가자(加資)되었다.
학문과 저술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원전
- 『겸재집(謙齋集)』
- 『구주집(鷗洲集)』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합천읍지(陜川邑誌)』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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