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적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 병자호란 당시 청군에 대적해서 싸운 의병장.
이칭
  • 구주(鷗洲)
  • 학중(學仲)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계축옥사|병자호란
  • 본관진주(晉州)
  • 사망 연도1678년(숙종 4)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동부승지|선공감직장|장악원직장|통정대부
  • 주요 저서구주집(鷗洲集)
  • 출생 연도1594년(선조 27)
  • 출생지합천(陜川)
집필 및 수정
  • 집필 2021년
  • 장정수 (고려대 강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10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강대적은 출중한 학문과 효행으로 널리 알려졌다. 사마시에 입격했으나, 계축옥사 이후 아버지와 형이 유배를 가게 되어 출사하지는 못했다. 이후 고향에서 은거하며 학문과 후진 양성에 주력하였다. 병자호란 때는 의병을 일으켰다.

정의

조선 후기 병자호란 당시 청군에 대적해서 싸운 의병장.

가계 및 인적 사항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학중(學仲), 호는 구주(鷗洲)이며, 1594년(선조 27)에 경상남도 합천(陜川)에서 태어났다. 증조할아버지는 강인수(姜仁壽)이고, 할아버지는 판관을 지낸 강세탁(姜世倬)이다. 아버지는 제용감정(濟用監正)을 지낸 당암(戇菴) 강익문(姜翼文), 어머니는 이후신(李後臣)의 딸이다. 형으로 진주목사(晉州牧使)를 지낸 강대수(姜大遂)가 있고, 동생은 강대연(姜大延)이다. 부인 영일정씨(迎日鄭氏)는 다대포첨사(多大浦僉使) 정사서(鄭思恕)의 딸이다. 아들은 강휘준(姜徽敏)과 강휘중(姜徽重), 강휘망(姜徽望)이다.

주요 활동

강대적은 학업과 효행으로 이름난 인물이다. 19세가 되던 1612년(광해군 4)에 사마시(司馬試)에 입격하였다. 그러나 이듬해인 1613년(광해군 5) 계축옥사(癸丑獄事)가 일어나고, 그 여파로 영창대군(永昌大君)이 살해되는 사건이 벌어져서 관직에는 나아가지 못하였다.

당시 동계(桐溪) 정온(鄭蘊)이 상소를 올려 영창대군에 대한 처리가 잘못된 점을 밝혔다가 사죄(死罪)로 논해지자, 형인 강대수가 정온을 옹호하여 먼 곳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아버지 강익문도 유배되었으므로 강대적 역시 출사하지 않았고, 고향인 합천에 은거하면서 학문에 정진하고 후진 양성에 힘을 쏟았다.

여러 차례에 걸쳐 세마(洗馬)‧참봉(參奉)‧찰방(察訪) 등으로 기용되었으나 관직에 나가지는 않았고, 병자호란(丙子胡亂)(1636~1637) 때 의병을 일으켰다.

1637년(인조 15)에는 충(忠)과 효(孝)를 겸비하였다고 하여 동부승지(同副承旨)를 제수받았다. 1647년(인조 25) 1월 선공감(繕工監) 직장(直長)이 되었다. 같은 해 7월에는 장악원(掌樂院) 직장 조지맹(趙志孟)과 상환(相換)하여 자리를 옮기게 되었으나 아버지 강익문의 병환이 심하여 낙향하였다. 1673년(현종 14) 9월, 80세의 나이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가자(加資)되었다.

학문과 저술

강대적은 강직한 학자로 정평이 나 있었다. 늙어서도 오히려 새롭다는 ‘자신잠(自新箴)’을 짓고 이를 학업의 기조로 삼았다. 저술로는 문집 『구주집(鷗洲集)』이 있다.

상훈과 추모

병자호란 당시 의병을 일으킨 공로를 인정받아 동부승지(同副承旨)의 관직을 받았다.

참고문헌

  • 원전

  • - 『겸재집(謙齋集)』

  • - 『구주집(鷗洲集)』

  •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 『합천읍지(陜川邑誌)』

주석

  • 주1

    : 조선 광해군 5년(1613)에, 대북(大北)이 영창 대군 및 반대파 세력을 제거하기 위하여 일으킨 옥사. 1608년 광해군이 즉위하자 대북의 정인홍(鄭仁弘), 이이첨(李爾瞻) 등이 선조의 적자인 영창 대군을 왕으로 옹립하고 역모하였다는 구실로 소북을 축출하였다. 우리말샘

  • 주2

    : 조선 시대에, 관원들의 임기가 찼거나 근무 성적이 좋은 경우 품계를 올려 주던 일. 또는 그 올린 품계. 왕의 즉위나 왕자의 탄생과 같은 나라의 경사스러운 일이 있거나, 반란을 평정하는 일이 있을 경우에 주로 행하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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