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 후기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서 인조를 호종한 문신.
가계 및 인적 사항
주요 활동
김성하는 김장생이 맡기는 일마다 잘 해냈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김장생의 천거를 받아 출사할 기회를 받았다. 그러나 김성하는 이를 사양하고 낙향하였으며, 자신의 공로를 주변에 자랑하거나 알리지 않아 칭찬을 받았다.
1636년 12월 병자호란(丙子胡亂)이 일어나자 임금을 호종하기 위해 숙부 김동달(金東達)과 함께 남한산성으로 갔다. 그러나 도착했을 때는 이미 청과의 화친이 성사된 뒤였으므로 그대로 귀향하였다. 호종한 공로로 절충장군(折衝將軍)의 계(階)를 받고 부호군(副護軍)의 군직을 받았다.
1676년(숙종 2) 고향에서 향년 82세에 사망하였다. 김성하는 역서와 예학에 조예가 깊었다고 전한다.
참고문헌
원전
- 『사계전서(沙溪全書)』
- 『송자대전(宋子大全)』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정묘거의록(丁卯擧義錄)』
- 『호남삼강록(湖南三綱錄)』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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