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하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서 인조를 호종한 문신.
이칭
대숙(大叔)
수우(守愚)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95년(선조 28)
사망 연도
1676년(숙종 2)
본관
광산(光山)
출생지
전주(全州)
주요 관직
부호군(副護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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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김성하는 조선 후기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서 인조를 호종한 문신이다. 정묘호란(丁卯胡亂) 당시에는 김장생의 의병진에서 활약하였으며, 병자호란(丙子胡亂) 때는 임금을 호종하기 위해 남한산성으로 갔다. 호종한 공로로 절충장군(折衝將軍)의 첩을 받고 부호군(副護軍)에 임명되었다. 학업과 효행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역서(易書)와 예학(禮學)에 조예가 깊었다.

정의
조선 후기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서 인조를 호종한 문신.
가계 및 인적 사항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대숙(大叔), 호는 수우(守愚)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생원 김구수(金龜壽), 할아버지는 생원 김희지(金熙止)이다. 아버지는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이었던 봉곡(鳳谷) 김동준(金東準), 어머니 김제조씨(金堤趙氏)는 조옥(趙沃)의 딸이다. 부인 송씨(宋氏)에게서 김재기(金在璣), 김재형(金在衡), 김재중(金在中), 김재정(金在精), 김재용金在鎔) 등 다섯 명의 아들과 두 딸을 얻었다. 사위는 신양(申瀁)과 경창회(慶昌會)이다.

주요 활동

김성하는 아버지 김동준에게 학업을 익혔으며, 효행과 우애, 벗들과의 교우로 이름이 났다. 그는 남들과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더라도 남들로부터 비방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1627년(인조 5) 1월, 후금(後金)의 군대가 침입하자 양호호소사(兩湖號召使)로 임명된 김장생의 종사관(從事官)이 되었다. 김장생의 격문을 가지고 의병(義兵)을 소집하고 의량(義糧)을 모았으며, 마침 분조(分朝)를 이끌고 남하하던 소현세자(昭顯世子)가 이른다는 소식을 듣고 김장생과 함께 공주(公州)로 가서 호종(扈從)하였다.

김성하는 김장생이 맡기는 일마다 잘 해냈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김장생의 천거를 받아 출사할 기회를 받았다. 그러나 김성하는 이를 사양하고 낙향하였으며, 자신의 공로를 주변에 자랑하거나 알리지 않아 칭찬을 받았다.

1636년 12월 병자호란(丙子胡亂)이 일어나자 임금을 호종하기 위해 숙부 김동달(金東達)과 함께 남한산성으로 갔다. 그러나 도착했을 때는 이미 청과의 화친이 성사된 뒤였으므로 그대로 귀향하였다. 호종한 공로로 절충장군(折衝將軍)의 계(階)를 받고 부호군(副護軍)의 군직을 받았다.

1676년(숙종 2) 고향에서 향년 82세에 사망하였다. 김성하는 역서와 예학에 조예가 깊었다고 전한다.

참고문헌

원전

『사계전서(沙溪全書)』
『송자대전(宋子大全)』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정묘거의록(丁卯擧義錄)』
『호남삼강록(湖南三綱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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