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창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서 인조를 호종한 문신.
이칭
  • 만휴당(晩休堂)
  • 천휴(天休)
인물/전통 인물
  • 본관안동(安東)
  • 사망 연도1680년(숙종 6)
  • 성별남성
  • 주요 관직군자감(軍資監) 정(正)|예빈시(禮賓寺) 정
  • 출생 연도1599년(선조 32)
집필 및 수정
  • 집필 2021년
  • 장정수 (고려대 강사)
  • 최종수정 2022년 08월 16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김수창은 조선 후기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서 인조를 호종한 문신이다. 문충공 김상헌의 손자로서 음직으로 벼슬에 나갔다. 병자호란 때 호종하였고 비안현감, 합천군수, 익산군수, 안악군수, 파주목사 등의 외직을 역임했다. 군자감 정(正), 예빈시 정 등을 역임하였다.

정의

조선 후기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서 인조를 호종한 문신.

가계 및 인적 사항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천휴(天休), 호는 만휴당(晩休堂)이다. 할아버지는 문충공(文忠公) 김상용(金尙容)이다. 아버지는 승지(承旨) 관직을 받은 김광형(金光炯), 어머니는 전주이씨(全州李氏) 이헌심(李獻諶)의 딸이다.

주요 활동

김수창은 어린 시절부터 김장생(金長生)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1624년(인조 2) 음직으로 봉선전(奉先殿) 참봉(參奉)이 되었다.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의 익위(翊衛)를 거쳐 1629년(인조 7) 3월 상서원(尙瑞院) 부직장(副直長)을 지냈다. 1636년(인조 14) 9월 사복시(司僕寺) 주부(主簿)가 되었고, 같은 해 12월 병자호란(丙子胡亂)이 일어나자 남한산성에 호종하여 호종록(扈從錄)에 들었다. 1639년(인조 17) 6월 비안현감(比安縣監)으로 외직에 나갔으며, 1645년(인조 23) 6월에 돌아와서는 상의원(尙衣院) 주부(主簿)가 되었다가, 비변사 낭청을 거쳐 이듬해 2월 합천군수(陜川郡守)가 되었다.

1651년(효종 2) 3월 장악원(掌樂院) 첨정(僉正)을 지내고, 1652년(효종 3) 2월에는 익산군수(益山郡守)로 나갔는데 2년 뒤 낙마하여 파출되었다가 얼마 뒤 직첩을 돌려받았다. 1655년(효종 6) 11월 한성서윤(漢城庶尹)에 제수되었다가 12월 임천군수(林川郡守)에 제수되었으나, 익산군수로 지낼 때 잘 다스리지 못하였다는 사간원의 탄핵으로 체차되었다. 1656년(효종 7) 5월, 선공감(繕工監) 첨정(僉正)을 거쳐 1657년(효종 8) 8월 안악군수(安岳郡守)로 임명되었다.

1660년(현종 1) 1월에는 파주목사(坡州牧使)를 지냈고, 1663년(현종 4) 10월 사도시(司䆃寺) 정(正)에 임명되었다. 1670년(현종 11) 장악원 첨정, 1673년(현종 14) 7월 군자감(軍資監) 정, 1675년(숙종 1) 7월, 예빈시(禮賓寺) 정 등을 역임하였다. 1677년(숙종 3) 4월 통정대부(通政大夫)로 가자(加資)되고 같은 해 6월에 오위장(五衛將)이 되었다. 사망 후 승지로 증직되었다.

참고문헌

  • 원전

  •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 『절곡집(節谷集)』

  • - 『효종실록(孝宗實錄)』

  • 인터넷 자료

  • - 장서각 기록유산 DB(https://visualjoseon.aks.ac.kr)

주석

  • 주1

    : 과거를 거치지 아니하고 조상의 공덕에 의하여 맡은 벼슬. 또는 그런 벼슬아치. 우리말샘

  • 주2

    : 조선 시대에, 왕세자의 시위(侍衛)를 맡아보던 관아. 태조 때 두었다가 고종 32년(1895)에 없앴다. 우리말샘

  • 주3

    : 조선 시대에 둔, 세자익위사의 으뜸 벼슬. 품계는 정오품으로 좌우 1명씩 두었다. 우리말샘

  • 주4

    : 조선 시대에, 옥새와 옥보(玉寶)ㆍ부패(符牌)ㆍ절부월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아. 세조 12년(1466)에 상서사를 고친 것으로, 고종 31년(1894)에 없앴다. 우리말샘

  • 주5

    : 임금이 탄 수레를 호위하여 따르던 일. 또는 그런 사람. 우리말샘

  • 주6

    : 조선 시대에, 임금의 의복과 궁내의 일용품, 보물 따위의 관리를 맡아보던 관아. 고종 32년(1895)에 상의사(尙衣司)로 고쳤다. 우리말샘

  • 주7

    : 조선 후기에, 실록청ㆍ도감(都監) 등의 임시 기구에서 실무를 맡아보던 당하관 벼슬. 각 관서에서 차출되었다. 우리말샘

  • 주8

    : 조선 시대에, 각 관아의 낭청에 속한 종사품 벼슬. 돈령부, 봉상시, 종부시, 사옹원, 내의원, 상의원, 사복시 따위에 두었다. 우리말샘

  • 주9

    :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직무나 직업을 그만두게 함. 우리말샘

  • 주10

    : 조정에서 내리는 벼슬아치의 임명장. 우리말샘

  • 주11

    : 관리의 임기가 차거나 부적당할 때 다른 사람으로 바꾸는 일을 이르던 말. 우리말샘

  • 주12

    : 조선 시대에, 관원들의 임기가 찼거나 근무 성적이 좋은 경우 품계를 올려 주던 일. 또는 그 올린 품계. 왕의 즉위나 왕자의 탄생과 같은 나라의 경사스러운 일이 있거나, 반란을 평정하는 일이 있을 경우에 주로 행하였다. 우리말샘

  • 주13

    : 조선 시대에, 오위의 군사를 거느리던 장수. 종이품의 관원으로 12명을 임명하였는데, 임진왜란 뒤에 정삼품으로 하고 인원도 15명으로 늘렸으나 실권은 훈련도감에 빼앗겼다. 우리말샘

  • 주14

    : 죽은 뒤에 품계와 벼슬을 추증하던 일. 종이품 벼슬아치의 부친, 조부, 증조부나 충신, 효자 및 학행(學行)이 높은 사람에게 내려 주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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