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에 있는 고려시대 첨성대로 구전되는 천문관측소. 천문관측시설.
내용
구조는 길이 약 3m의 장대석(長臺石)으로 약 3m 사방의 4각형 석대(石臺)를 만들고 이것을 역시 약 3m 길이의 석재 5개로 받치고 있는데, 그 중 4개는 석대의 네 귀퉁이를, 1개는 중앙을 받치고 있다. 그리고 석대의 윗면 네 귀퉁이에 하변이 약 15㎝의 구멍이 뚫어져 있어 본래 이곳에 돌난간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 개성첨성대에 대하여는 『고려사』 지리지, 『세종실록』 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비롯한 여러 문헌에도 일체 언급한 바가 없다. 그러나 『고려사』 천문지·역지(曆志)·백관지(百官志) 서운관조(書雲觀條) 등을 보아 고려시대에 첨성대가 있었음은 의심할 바가 없고, 또 이 석조물에 대한 구전이나 구조로 보아 이것이 실제로 고려시대의 첨성대였을 가능성은 매우 크다고 하겠다.
그리고 이 첨성대의 축조시기는 몽고의 침입으로 정부가 40년 동안 강도(江都)로 피하였다가 돌아와서 파괴된 개성을 복구할 때 새로이 축조되었을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첨성대에서의 관측에 관측기계를 사용하였는지의 여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그것은 『고려사』에 별의 정확한 위치 관측(적경, 적위 등)의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첨성대에 지주(支柱)의 하나가 그 중앙을 받치고 있다는 사실은 간단한 기계를 그 중앙에 설치하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져보게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가설일 뿐이다.
참고문헌
- 『송도(松都)의 고적(古蹟)』(고유섭, 열화당, 1977)
- 『한국과학기술사(韓國科學技術史)』(전상운, 정음사,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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