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862년(철종 13) 5월 7일 경상도 거창 에서 일어난 민란.
내용
이시규(李時奎)·최남기(崔南紀)·이승문(李升文) 등이 환곡을 비싼 값에 매각하고 다른 고을의 싼 곡식으로 채워 이득을 보는 이무(移貿)와 관아에서 경저리(京邸吏)나 영저리(營邸吏)에게 진 빚인 저채(邸債) 및 환호(還戶) 등의 폐단을 시정하기 위해 통문을 돌리고 농민들을 모아서 관아를 습격하고 아전·포교의 집을 포함하여 민가 40호를 부수거나 불태웠다.
부사 황종석은 진주에서 이 소식을 듣고 당황한 나머지 말미를 얻어 상경했고, 암행어사 이인명(李寅命)이 주동자 이시규·최남기·이승문 등 세 사람을 붙들어 대구감영으로 압송하는 길에 그들의 족당(族黨)이 탈취해갔으나 곧 최남기·이승문은 잡혀 진주로 보내져 효수되었고, 포리(逋吏) 신재문(愼在文)·장복영(章福榮) 등은 장형(杖刑)에 처해졌다.
참고문헌
-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 『임술록(壬戌錄)』
- 「19세기 경상우병영(慶尙右兵營)의 재정구조(財政構造)와 진주농민항쟁(晉州農民抗爭)」(송찬섭, 『한국문화』11,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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