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민란

  • 역사
  • 사건
  • 조선 후기
1862년(철종 13) 5월 7일 경상도 거창 에서 일어난 민란.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최진옥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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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862년(철종 13) 5월 7일 경상도 거창 에서 일어난 민란.

내용

진주민란의 영향을 받아 당시 거창현에서도 전정·군정·환곡 등 이른바 삼정(三政)의 문란에 불만을 품은 농민들은 부사 황종석(黃鍾奭)이 진주민란을 안핵(按覈)하기 위해 자리를 비운 틈을 이용하여 난을 일으켰다.

이시규(李時奎)·최남기(崔南紀)·이승문(李升文) 등이 환곡을 비싼 값에 매각하고 다른 고을의 싼 곡식으로 채워 이득을 보는 이무(移貿)와 관아에서 경저리(京邸吏)나 영저리(營邸吏)에게 진 빚인 저채(邸債) 및 환호(還戶) 등의 폐단을 시정하기 위해 통문을 돌리고 농민들을 모아서 관아를 습격하고 아전·포교의 집을 포함하여 민가 40호를 부수거나 불태웠다.

부사 황종석은 진주에서 이 소식을 듣고 당황한 나머지 말미를 얻어 상경했고, 암행어사 이인명(李寅命)이 주동자 이시규·최남기·이승문 등 세 사람을 붙들어 대구감영으로 압송하는 길에 그들의 족당(族黨)이 탈취해갔으나 곧 최남기·이승문은 잡혀 진주로 보내져 효수되었고, 포리(逋吏) 신재문(愼在文)·장복영(章福榮) 등은 장형(杖刑)에 처해졌다.

참고문헌

  • -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 - 『임술록(壬戌錄)』

  • - 「19세기 경상우병영(慶尙右兵營)의 재정구조(財政構造)와 진주농민항쟁(晉州農民抗爭)」(송찬섭, 『한국문화』11,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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