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암유고』는 1916년 조선 후기 학자 윤동수의 시와 산문을 엮어 간행한 시문집이다. 윤동수의 손자 윤명기와 후손 윤상종에 의해 1916년 12권 6책의 활자본으로 간행되었다. 이 문집은 한시, 상소, 서간, 잡저, 제문, 묘지명, 행장, 실기 등을 포함해 윤동수의 학문적·문학적 면모를 포괄적으로 보여 준다. 특히 은둔적 삶을 살아야 했던 사대부의 내면과 예학 중심의 학문적 고민이 시문과 서간에 잘 드러나며, 소론계 인물로서 윤증과 송시열의 관계를 다룬 「명재선생연보후설」 등은 사상사적으로도 가치가 있다.
윤동수(尹東洙: 1674~1739)는 조선 후기 학자로,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자는 사달(士達) 또는 대원(大源), 호는 경암(敬庵)이다. 호조참의, 공조참의 등을 역임했다.
1739년(영조 15) 윤동수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손자 윤명기(尹命基)가 문집 간행을 주도했다. 이 과정에서 윤광소에게 행장과 연보를, 이의경에게 묘지명을, 김이행에게는 유사 작성을 각각 부탁하여 원고를 받았다. 그러나 이 시도는 곧바로 간행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후 윤동수의 족손(族孫) 윤형규(尹馨圭)를 통해 문집의 편차가 진행되었으나, 이때에도 실제 간행에는 이르지 못했다. 최종적으로는 1916년, 후손 윤상종(尹相鍾)에 의해 활자본으로 간행되었다. 간기(刊記)에 따르면, 편집 겸 발행인은 윤상종이며, 인쇄는 경상남도 창녕군의 하기병(河璣秉)이 담당했고, 발행 및 인쇄지는 충청남도 논산군 노성면이다.
권1에는 한시 134수가 대체로 창작 연대순으로 수록되어 있다. 지인 및 문인들과의 교유를 반영한 차운시와 증시가 대부분이며, 남구만(南九萬) · 권구(權絿) 및 종형제들에 대한 만시, 단양군수 시절 그곳 일대를 유람하면서 지은 작품들도 포함되어 있다. 권2에는 대부분 사직을 청하는 상소문이 수록되어 있다. 권35에는 인물별 · 연대순으로 정리된 약 200편의 서간문이 실려 있다. 권68에는 잡저 23편, 서 4편, 기 1편, 발 1편이 수록되어 있다. 권9~11에는 고축문 10편, 제문 11편, 묘표 7편, 묘지명 4편, 묘갈명 12편, 행장 9편이 실려 있다. 권11의 실기에는 윤광소가 편찬한 연보를 시작으로, 그가 지은 행장, 이의경이 작성한 묘지명, 조카이자 문인인 김이행이 쓴 유사가 부록으로 수록되어 있다.
노론과 소론의 분당 및 정치적 갈등 속에서, 소론계 사대부였던 윤동수는 중앙 정계를 멀리하고 고향에 은거하며 학문에 전념했다. 그의 한시에는 이러한 은둔적 삶을 살아야 했던 사대부의 고민과 내면의 심경이 잘 드러나 있으며, 서간문 대부분은 예학을 중심으로 한 학문적 토론 내용을 담고 있다. 잡저 가운데 「명재선생연보후설(明齋先生年譜後說)」은 윤증(尹拯)과 송시열(宋時烈)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조명한 중요한 논설이다.
『경암유고』는 윤동수의 학문과 문학 세계를 폭넓게 조망할 수 있는 자료이다. 특히 윤증의 후손이자 소론계 사대부로서, 가학을 계승하고자 했던 윤동수의 노력과 사색이 문집 곳곳에 드러나 있으며, 당대 정치 상황 속에서의 입장과 고민 역시 문학적 · 사상적 표현으로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