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언율시로 『동문선』 권12에 수록되어 있다. 작자는 효공왕 때의 사람으로 당나라에 들어가 빈공과에 급제하였는데, 이 시는 작자가 당나라에 있을 때 주 목왕(周穆王)이 서왕모(西王母)와 만나 잔치하였다는 요지(瑤池)인 경주(지금의 중국 감숙성(甘肅省) 경천현(涇川縣))에 있는 용삭사에서 운서상인에게 준 시로서, 용삭사 주위의 승경과 인생의 무상함을 불법의 진리에 비겨 읊었다.
시의 제1∼4구까지는 용삭사의 선경과 주변 산세의 험난함을 묘사하였고, 이어서 5·6구에서는 인생의 덧없음을 자연, 즉 대[竹]의 푸르름과 대비하여 표현하면서, 결론적으로 7·8구에서는 시비(是非)와 공색(空色)의 이치를 깨달아 세속의 시름에서 깨어나야 함을 강조하였다.
『백운소설』에서는 제3·4구를 들어 최치원(崔致遠)의 『등윤주자화사상방(登潤州慈和寺上房)』, 박인량(朴寅亮)의 『사송과사주구산사(使宋過泗州龜山寺)』의 경구(警句)와 함께 문장으로 나라를 빛낸 명구라 하였다.
높은 곳에 올라 속세를 굽어보는 가운데, 도가적 선취와 불교적 제행무상이 어우러지며 부귀와 이욕을 초탈한 심경을 읊었는데, 제영(題詠)으로서는 경관의 묘사나 사색의 깊이로 볼 때 비견할 작품이 흔치 않은 절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