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극은 1920년대 초중반 소비에트 프롤레타리아 연극의 영향을 받아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나 계급 의식을 표현하며 사상적 경향성을 드러낸 일련의 연극이다. 이러한 경향극의 특성은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카프, KAPF) 결성 이후 프로극(프롤레타리아 연극)으로 이어졌다. 1920년대 초반 경향극의 형성 배경으로는 3·1운동 이후 사회 문화 운동 차원의 연극 운동이 전개된 상황과 소비에트 사회주의 혁명의 영향을 들 수 있다. 경향극은 공통적으로 농민과 노동자의 빈궁한 현실을 묘사하며 이들이 직면하는 비극적 상황에 초점을 맞춘다.
경향극은 1920년대에 형성되었다. 그 배경으로는 3·1운동 이후 사회 문화 운동 차원의 연극 운동이 전개되었던 상황, 그리고 주1 사회주의 주2의 영향을 들 수 있다. 경향극은 이 같은 국내외적 사회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카프[^3] 결성 시점(1925년)을 기준으로 경향극과 주4을 구분하기도 하지만 모두 계급 주5을 드러내는 선전극이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때에 따라 1920~30년대 사회주의적 경향성을 띤 연극을 모두 경향극으로 지칭하기도 한다. 당대에도 신경향파 주6과 프로 주7이 혼용되었다는 점에서 두 개념을 엄밀하게 구분하기 어려웠다. “신경향파 내지 조선 주8 문학 운동”이라 명명하며 신경향파 문학과 프로 문학을 구분하지 않고 사용하기도 했다.
이를 고려하면 경향극의 특징이 프로극으로 계승되어 카프 해산 시점까지 이어졌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신경향파 문예론이 형성되는 1920년 무렵을 기점으로, 단체 활동이라는 측면에서 염군사(焰群社, 1922년)와 파스큘라(PASKYULA, 1923년)가 조직된 시점인 1920년대 초반을 경향극 혹은 초기 프로극의 시기로 볼 수 있다. 프로 문예 운동은 1925년 8월, 두 단체가 통합한 카프가 조직되면서 명확한 방향성을 갖게 된다.
경향극으로 분류되는 작품은 카프와 직접적인 관련을 맺지 않고 주9으로 활동했던 김운정, 김유방(金維邦), 임영빈(任英彬) 등이 발표한 일련의 연극이다. 이들 작품을 초기 프로 희곡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김운정의 「기적 불 때」(1924년), 임영빈의 「복어알」(1925년) 등이 해당한다. 조명희(趙明熙)의 「김영일의 사(死)」(1921년)를 최초의 경향극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신경향파 문학 예술 운동이 1922년에 창단한 염군사 극부(劇部) 활동을 경향극의 출발이라 본다면 다시 논의해 볼 여지가 있다.
「기적 불 때」는 추운 겨울 노동자 가족에게 닥친 비극을 다루고 있다. 주10에 손자는 공장에서 중상을 입고 모두가 병원에 간 사이 노인이 양잿물을 마시고 자살하는 결말로 나아간다. 김유방의 「삼천오백냥」(1924년)은 가난 때문에 술집 주11로 팔려나가는 처녀와 그를 사랑하는 청년의 이야기를 담는다. 「복어알」 역시 가난한 가족이 쓰레기통을 뒤지다 복어알을 발견하고 함께 먹다가 모두 죽음에 이르는 이야기이다.
경향극은 자본주의하에서 노동자 혹은 주12가 겪어야 하는 가난과 고통을 다룬다. 경향극으로 분류할 수 있는 작품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노동자 가족의 빈궁한 현실을 묘사하며 계급적 적대감을 드러내고, 결말부에 이르면 급작스러운 사고, 파괴, 죽음 등 극적인 설정으로 마무리되고 있는 점이다. 1920년대 초반의 경향극이 노동자들의 비극적 상황에 초점을 맞춘다면, 김영팔(金永八), 송영 등이 발표한 이후의 프로 희곡은 역시 빈궁함을 소재로 하지만 프롤레타리아 주13의 정당성을 지지하거나 노동자가 각성하는 순간에서 마무리된다는 점에서 차별점을 갖는다. 곧 192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 중반에 이르는 프로극은 계급 의식이 외부로 발산하며 노동자들의 각성과 집단 행동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이전의 경향극 혹은 초기 프로극과 차별점을 갖게 된다.
1920년대에 각 극단이 산발적으로 공연하던 경향극은 카프 결성을 기점으로 더 조직적인 체계를 가지고 프로극으로 계승되었다. 카프 결성 이후인 1927년에 국내 최초의 프로 연극 단체임을 내세운 극성회가 조직되었고, 1930년에는 카프 연극부가 마련되었으며, 1932년에 출발한 극단 메가폰은 유진오(兪鎭五)의 주14, 송영의 주15 등을 무대에 올린다. 역시 같은 해에 결성된 극단 신건설(新建設)이 1933년에 창립 공연 「서부전선 이상 없다」(레마르크 작, 나웅 주16를 비롯해 송영의 「신임이사장」(1934년) 등을 공연하나 1934년, 신건설사 주17이라고 일컫는 제2차 카프 검거 사건을 계기로 더 이상 활동을 진행하지 못한다.
경향극에서 프로극으로 이어지는 좌익 연극의 흐름은 1930년대 후반 주18의 시기와 1940년대 초반 국민 주19 시기를 지나며 일정 기간 단절된다. 이 시기 프로극 운동을 주도했던 연극인들 역시 상업적인 대중극과 일본의 전쟁을 정당화하는 국민 연극 창작에 가담하기도 한다. 계급 문제를 내세운 경향극과 프로극의 흐름은 8·15광복 이후 다시 이어지게 된다. 격렬한 이념 투쟁이 이루어지는 해방 공간에서 좌익 연극인들은 다양한 연극적 모색을 이어가며 농민, 노동자 등을 대상으로 한 연극 대중화 운동에 앞장서면서 당대 극계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정치적 상황이 급변하는 가운데 연극인의 월북이 이어지고, 이후 한국전쟁(韓國戰爭)이 발발하면서 사회주의 주20와 계급 의식을 강조하는 연극의 흐름은 북한의 사실주의(寫實主義) 연극으로 이어진다.
경향극 혹은 초기 프로극은 목적성이 분명하며 주21적으로도 완성되지 못한 경우가 많아 급격한 주22으로 경도되는 특징을 갖는다. 그런데도 계급화된 사회에 대한 문제 의식은 이후 프로극의 토대가 되었으며, 해방 이후 좌익 연극을 비롯해 북한의 사회주의 주23 연극의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