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마단(曲馬團)은 서양의 서커스(Circus)를 한자로 표현한 것이다. 곡마(曲馬)란 말을 재주부리게 한다는 뜻의 일본어에서 유래되었다. 일본 막부는 조선 통신사가 보여 준 마상재(馬上才)에 큰 관심을 보였고, 민간에서도 조선곡마(朝鮮曲馬)라는 말이 유행하게 되었다. 훗날 서양의 서커스가 유입되자 이를 곡마단이라고 불렀다. 중국에서는 서커스를 마희(馬戲)라고 쓴다.
한반도에 들어온 최초의 곡마단은 러시아의 바로프스키 곡마단이다. 1910년 10월 만주를 거쳐 조선에 들어온 바로프스키 곡마단은 명동에서 공연을 했고, 재조(在朝) 일본인 및 조선인 관객들이 이를 관람했다. 순종은 창덕궁 영화당 앞에서 이 곡마단의 공연을 관람하고 어사금(御賜金)을 내렸다고 한다. 1915년 경복궁에서 열린, 시정(始政) 5주년 기념 조선물산공진회에서는 일본에서 유입된 곡마단이 연예장에서 관객을 맞이하면서 곡마단이 전국적으로 알려졌고 말광대라고도 불렸다. 이후 일제강점기 동안 한반도에는 30여개 이상의 외국 곡마단이 등장했으며, 러시아, 이탈리아, 영국, 일본, 중국 등 세계 각국의 공연 단체가 확인된다.
등장 초기, 곡마단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점차 지방으로 활동 범위를 넓혔다. 철도역이나 시장 근처 공터에 자리를 잡고 임시 극장을 설치했다. 곡마단의 주요 공연 내용은 원형 무대에서 말을 달리며 기예를 연행(演行)하는 것뿐만 아니라 공중그네, 줄타기, 마술, 각종 곡예 등을 포함했다. 특히 마술의 인기가 높아서 나중에는 마술을 전문적으로 연행하는 마술단이 성행할 정도였다. 1920년대 후반에는 조선인이 운영하는 곡마단이 나타났다. 미야코[都] 곡마단 단장 홍종석, 가마타[蒲田] 곡마단 단장 박평산 등, 단체의 이름은 일본식이나 대표자는 조선인이 맡는 곡마단들이 출현했다. 조선인 곡마단의 등장은 외래 공연 형태인 서커스가 한반도에서 자국화되는 과정을 보여 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해방 이후 1970년대까지는 곡마단의 시대라고도 부를 만큼 전국 각지에 곡마단의 공연이 활발했다. 유사한 명칭으로 서커스단 외에 가극단, 악극단, 잡극단, 유랑 극단 등 다양한 공연 단체가 나타났는데 이들의 공연 내용이나 공연 방식은 기존의 곡마단과 큰 차이가 없으며, 동물 재주 부리기의 비중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뿐이었다. 1960년대에는 서독, 대만 등 외국 서커스단도 크게 유행했다.
곡마단은 외국에서 유입된 공연 예술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있으나, 공연의 속성은 우리의 전통 공연 예술과 매우 닮아 있다. 전통적인 곡예와 묘기 중에는 줄타기, 솟대타기, 땅재주, 접시돌리기, 방울 쳐올리기, 죽방울 치기, 동물 재주 부리기, 동물 가장 가면희 등이 있는데, 오늘날 서커스단의 공연 내용과 많은 공통점이 존재한다. 곡마단 역시 이러한 공연 원리를 바탕으로 큰 인기를 끌었으며 일제강점기 동안 전통 공연 예술 연희자들에게 공연의 기회를 주었다. 또한 훗날 TV 스타가 된 많은 연예인들의 산실이 되기도 했다.
캐나다에서 조직된 ‘태양의 서커스’는 20개가 넘는 팀으로 구성되어 전세계에서 공연 활동을 벌이고 있다. 중국 상해의 ‘마희성 공연단’은 중국의 전통 잡기와 현대식 무대 구성을 결합하여 중국 전통극의 정수를 보여 주고 있다. 북한의 평양교예단도 수준 높은 기예와 공연으로 유명하다. 한국 역시 다양한 곡예와 묘기의 역사를 갖고 있으며 충실한 복원을 위해 오랫동안 노력하고 있다. 곡마단은 우리의 전통 공연 예술과 연출력, IT 기술 등을 접목해 한국 공연 예술의 현재를 제대로 보여 주는 새로운 공연물로 재탄생할 수 있는 분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