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은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 후기 척불소를 올렸던 문신.
이칭
백량(伯良)
고산(孤山)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본관
창원(昌原)
주요 저서
고산선생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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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공은은 고려 후기 척불소를 올렸던 문신이다. 원나라의 한림학사 출신으로 고려에 귀화하여 창원백(昌原伯)에 봉해진 공소(孔紹)의 손자이며, 고려 말 예조총랑을 지낸 공부(孔俯)는 형이다. 척불소를 올렸다가 유배를 갔으며, 조선 건국 후 벼슬에 나가지 않고 은거하였다.

정의
고려 후기 척불소를 올렸던 문신.
가계 및 인적 사항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백량(伯良), 호는 고산(孤山)이다. 할아버지 공소(孔紹)가 원나라에서 공민왕노국대장공주를 모시고 고려에 들어와 귀화하여 회원군(檜原君), 창원백(昌原伯)에 봉해져 창원공씨(昌原孔氏)의 시조가 되었다. 공은의 아버지는 공여(孔帤), 어머니는 경주최씨 최수(崔粹)의 딸이다. 부인은 함양박씨이며, 장남 공신굉(孔臣肱)은 신호위대장군(神虎衛大將軍)을 역임하였고, 차남은 공신주(孔臣肘)이다. 공은의 형 공부(孔俯)는 공양왕 때 예조총랑을 역임하고, 조선 건국 후에는 대명 외교 사신으로 활약하였다.

주요 활동

1892년 간행한 『곡부공씨족보(曲阜孔氏族譜)』와 기우만(奇宇萬, 1846~1916)이 쓴 「고려문하시랑평장사고산공공묘비(高麗門下侍郞平章事孤山孔公墓碑)」에 따르면, 공은은 1380년(우왕 6) 과거에 합격하여 벼슬이 문하시랑 평장사(平章事)에 이르렀던 것으로 전한다. 그의 형 공부(孔俯)가 1376년(우왕 2)에 급제하는 것으로 보아, 공은도 응시해서 합격하였다고 하면 이 시기가 맞을 것이다. 그러나 「전조과거사적(前朝科擧事蹟)」이나 「등과록전편(登科錄前篇)」에 수록된 염흥방(廉興邦)과 박형(朴形)을 좌주(座主)로 하는 우왕 6년의 과거 합격자 33명 가운데에서 공은의 이름을 확인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 합격 시기나 합격 여부는 의문이다.

평장사 벼슬을 역임한 것으로 전하고 있는데, 이것도 사실로 보기 어렵다. 평장사는 재상급 벼슬로서 우왕 6년에 과거에 합격하여 벼슬을 시작하여 고속 승진하더라도 고려 말에 이 직급의 벼슬에 이르기는 어렵다. 그의 형 공부가 1391년(공양왕 3) 6월에 정4품의 예조총랑(禮曹摠郞)으로 재직하고 있는 것을 보면 공은의 벼슬은 이 직급보다 아래였을 가능성이 높다.

공은은 목은(牧隱) 이색(李穡)과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문인이었던 것으로 전한다. 그의 문집 『고산선생실기(孤山先生實紀)』에서 척불소(斥佛疏)를 올렸던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 때문에 예안(禮安) 의금도(依金島)에 유배되었다고 전한다. 고려 말 김초(金貂) 등이 척불소를 올렸다가 수감되는 등 처벌을 받은 사례를 감안하면 공은의 유배도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목은 이색은 유배 가는 그에게 「한풍시(寒風詩)」와 「청산백설도시(靑山白雪圖詩)」를 지어 주었다고 한다.

조선 건국 후 조정에서 여러 차례 불렀으나 공은은 이에 응하지 않아 다시 유배를 갔다. 순천의 낙포로 이배(移配)되어 자신을 고산(孤山)이라 하고, 여기에서 생을 마쳤다. 『고산선생실기』에는 「순천적소시(順天謫所詩)」가 남겨져 있다.

학문과 저술

공은의 문집인 『고산선생실기』에 순천 유배 때 지은 시 한 수가 전하고 있다. 척불 상소를 올렸다고 하였으나, 그 내용은 전하지 않는다.

상훈과 추모

경현사(景賢祠)와 두문서원(杜門書院)에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원전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고산선생실기(孤山先生實紀)』
『곡부공씨족보(曲阜孔氏族譜)』(1892)
『창원공씨족보(昌原孔氏族譜)』(1772)

논문

도현철, 「고려말기 사대부의 불교 인식과 대응」(『역사와 현실』 20, 한국역사연구회, 1996)
송창한, 「김초의 척불론에 대하여: 공양왕 3년의 상소문을 중심으로」(『대구사학』 27, 대구사학회, 1985)
관련 미디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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