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고려 후기 판전교시사를 역임한 문신.
가계 및 인적 사항
주요 활동
과거 합격 후 강호문이 어떤 벼슬을 지냈는지 당시 인사 발령 기록에서는 확인할 수 없다. 다만, 『고려사』 「열녀전」에서 그의 부인 문씨를 소개하면서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 강호문에게 시집갔다”는 기록이 있어서, 강호문의 최종 벼슬이 판전교시사였음을 알 수 있다. 강호문은 성균사예(成均司藝)도 역임하였는데, 이는 이색(李穡)이 쓴 ‘사암(思菴) 유숙(柳淑)의 시권(詩卷)에 보낸 서문(序文)’에서 확인된다.
강호문은 수령인 천안부사(天安府使)로도 활동했는데, 그가 재임 중 직접 쓴 「영주남원루기(寧州南院樓記)」에서 “지난 계축년(1373년, 공민왕 22) 봄에 내가 조정의 명령으로 이 고을에 부임하게 되었다”고 한 데서 드러나고 있다.
강호문은 말년에 전라도 담양에 우거(寓居)한 것으로 전한다. 유교 지식인들과의 교유도 활발하여 같은 시기에 급제한 이숭인, 정도전과 돈독하게 지냈고, 이색, 정몽주(鄭夢周)와도 친교를 맺었다. 특히 권근(權近)은 그의 시 「남행록(南行錄)」에서 “자야(子埜) 강 선생이 역마를 달려 찾아보고 작별한 뒤에 시 두 수를 부쳐 왔다〔子埜康先生馳馹見訪, 別後寄詩二首〕”라고 하여, 둘 사이 친분이 남달랐음을 보여주고 있다.
학문과 저술
참고문헌
원전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도은집(陶隱集)』
- 『동문선(東文選)』
- 『목은집(牧隱集)』
- 『삼봉집(三峯集)』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양촌집(陽村集)』
- 『포은집(圃隱集)』
논문
- 하정승, 「고려시대 유학 교육과 여말선초 학맥의 형성」(『동방한문학』 82, 동방한문학회, 2020)
- 김난옥, 「고려말 시문 교류와 인적관계」(『한국사학보』 61, 고려사학회, 2015)
- 강혜선, 「고려 말 사대부의 교유시 연구」(『한국한시연구』 22, 한국한시학회, 2014)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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