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건연대는 미상이나 조선 초기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의 중등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해 창건되었다. 원래 웅진동 숭산 기슭에 있던 것을 1623년 순찰사 신감(申鑑)과 목사 송흥주(宋興周)가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1710년 관찰사 한배하(韓配夏)가 명륜당을 중수하였고, 1751년 판관 서흥보(徐興輔)가 다시 명륜당을 보수하였으며, 1813년 관찰사 원재명(元在明)이 향교 전체를 중수하였다. 1822년 관찰사 이석규(李錫奎)가 대성전을, 1831년 관찰사 박제문(朴齊聞)이 강학루를, 1839년 관찰사 조기영(趙冀永)이 대성전을, 1846년 판관 권영규(權永奎)가 강학루를, 1870년 관찰사 민치상(閔致庠)이 명륜당을, 1873년 판관 조명교(趙明敎)가 대성전을 각각 중수하였으며, 1954년 문묘 · 명륜당 · 동재 · 존경각 등을 전면 보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3칸의 대성전을 중심으로 동무(東廡) · 서무(西廡) · 신문(神門) · 제기고(祭器庫) · 명륜당 · 강학루(講學樓) · 동재(東齋) · 서재(西齋) · 존경각(尊經閣) · 외삼문(外三門) · 고직실(庫直室) 등이 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10철(十哲), 송조6현(宋朝六賢)의 위패가, 동무 · 서무에는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는 국가로부터 전답과 노비, 전적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현재는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 ·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고 초하루 · 보름에 분향을 올리고 있다.
이 향교는 현재 지역유림들의 모성계(慕聖契)에서 기금을 마련하여 운영하고 있으며, 소장도서는 89종 337책이 있다. 1978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