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조선학생회와 조선학생총연합회 발기파가 대립되고 있는 상황에서 일부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성향의 학생들이 모여 기성학생단체인 조선학생회 및 이와 유사한 단체를 일축하고 자파 독자의 단체 결성을 선언하였다.
그 중 북풍회 계통의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서울 낙원동에서 사회교육의 연구와 민중본위의 교육을 목적으로 1925년 5월 초에 이 단체를 별도로 조직하였다.
그러나 조직 목적과 구성원들의 경향이 조선총독부에서 '불온'으로 규정되었고, 같은 해 11월 해산명령으로 큰 활동을 펼치지 못했다. 하지만 공학회의 창립으로 항일 학생운동은 한 차원 도약할 수 있었다.
공학회가 해산되자 여기에 소속되었던 학생 중의 일부는 사회주의단체 화요회계와 제휴하여 1925년 9월 27일 조선학생사회과학연구회를 창립하였다. 그리고 공학회 주류는 재조직 공작을 전개하였으나 탄압으로 실패하자 북풍회계의 후원으로 서울학생구락부를 창립하였다. →서울학생구락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