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 1책. 석인본. 1927년 원지상(元持常)이 간행하였다. 권두에 한치응(韓致應)의 서문과 권말에 원세신(元世臣)의 발문이 있다. 규장각 도서와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다.
권1은 일고(逸稿)로 탄세사(歎世詞)·몽유록(夢遊錄)·여우인서(與友人書), 권2·3은 실기(實記)로 전(傳)·행장·묘갈명·녹서(錄敍)·계(啓)·축문·지(識)·시장(諡狀)·기·유장(遺狀)·지(誌)·소·계문·봉안문·상량문·기략(記略)·사적·통문·비명·고유문·창건기·공문, 권4는 척유(摭遺)로 방목(榜目)·사화록(士禍錄)·제영(題詠)·후서(後敍) 등과 추록으로 도형(圖形) 8면이 수록되어 있다.
저자의 평생 저술을 그의 손자인 숙강(叔康)이 무오사화로 화를 당했을 때 불에 태웠기 때문에 전하는 시문이 별로 없다. 「탄세사」에서는 백이숙제(伯夷叔齊)의 옛일을 회상하면서 불의에 항거하는 선비의 지조를 토로하고, 사람들이 영화를 생각하여 의리와 양심을 저버리는 행동을 탄식하였다.
「몽유록」은 단종을 추모한 나머지, 꿈에 사육신을 상봉한 의제(擬題)로서, 어느 날 준수한 남아를 만나 왕 앞에 인도되어 그곳에서 여섯 신하와 함께 주연을 베풀고 시 한수씩을 읊으며 고금치란에 관한 일들을 의론하면서 놀다가 헤어졌는데, 깨어보니 꿈이었다는 내용이다. 이 「원생몽유록(元生夢遊錄)」의 작가에 대하여는 몇 가지 이설이 있다.
「여우인서」에서는 자신의 구차한 삶을 부끄러워하면서 죽어서 선왕을 모시는 것이 정도(正道)인 줄은 알고 있으나, 어리석고 용렬하여 옛 철인들의 자취를 본받지 못함을 한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