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심학(張心學: 1804~1865)은 조선 후기 무신으로, 본관은 인동(仁同)이며, 자는 재중(在中), 호는 강해(江海)이다. 거주지는 경상북도 영천(永川)이다. 조부는 장사경(張思敬)이고, 아버지는 장세규(張世圭)이다.
『강해집(江海集)』은 1907년(고종 42)에 간행된 7권 3책의 목활자본으로, 국립중앙도서관, 한국국학진흥원, 안동대학교 등에 소장되어 있다. 1906년(고종 43)에 김도화(金道和)가 작성한 서문이 있고, 신재석(申在錫)과 장익홍(張翊弘)이 쓴 발문이 있다.
1907년에 장심학의 재종질 장익홍(張翊弘)에 의해 간행되었다.
권1∼3에는 시 270수, 권4에는 서(書) 12편, 잡저 2편, 서(序) 5편, 기 5편, 권5에는 책 1편, 계장 7편, 제문 6편, 권6에는 발 3편, 명 3편, 상량문 1편, 묘갈명 3편, 권7은 부록으로 만사 · 제문 · 묘갈명 · 행장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시 작품들은 지인들과 창수한 것과 선유들의 시에 차운한 것이 많다. 또한 이 작품들에서는 작가의 내적 갈등과 강렬한 자의식이 교차하는데, 뜻을 이루지 못한 채 비관하고 고뇌하는 심정을 표출하고 있으며, 오랜 시간 집을 떠나 객지에서 떠도는 나그네의 심사와 자신의 불투명한 앞날에 대한 불안한 정서 등을 담아내고 있다.
한문 산문 작품 가운데 「통유일향사림문(通諭一鄕士林文)」은 향학의 진작을 건의한 것이고, 「대책(對策)」은 경국이민(經國理民)의 근본인 삼정(三政)의 시책에 대한 물음에 답한 것으로, 그 폐단을 상세히 지적하고, 백성을 사랑하고 걱정하여 인덕을 베풀며, 관리들의 농락 · 횡포를 엄중히 처단하라고 촉구한 글이다. 이외의 여타 작품들은 다양한 전고를 활용하고, 대화체 혹은 의인화 수법을 적절히 구사하여 논지를 이끌어 나가는 구성력과 수사법을 보여 주고 있다.
참고로 『강해집』에 수록되지 않은 성균관대학교 소장의 「문요전(文鰩傳)」이 있다. 이 글은 장심학이 57세에 지은 복합적 성격의 주1 작품이다. 작품의 대략적인 내용은 문요(文鰩)가 번번이 용문(龍門)에서 미끌어지자 앵무새로 변신하여 새들의 벼슬아치 수장인 붕새와 그 변신에 대해 문답하고 결국 새들의 조정에서 무관의 벼슬을 받는다는 것이다. 분량은 47면 9,200여 자로 여타 가전 작품에 비해 대폭 확대되었다. 이 작품은 드러내고 싶지 않으나 자신의 이력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무과 급제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하기 위해 쓰인 것이다.
『강해집』은 장심학의 문학 세계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수록된 각종 시문을 통해서 그가 형가(荊軻)와 같은 의기로 살고자 했으며, 무관이 된 다음에도 두예(杜預)를 존모하며 서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으며, 이광(李廣)과 같은 덕업으로 기억되기를 꿈꾸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그의 문학 세계에 대해서 한시는 두보(杜甫)와 이백(李白)을, 한문 산문은 사마천(司馬遷)과 반고(班固)를 본받았다는 칭송을 받기도 했다. 영남의 쇠락한 양반 집안의 후예로서 현달하진 못했지만, 지방의 문인 지식인으로 시대를 고민하며 자신의 삶을 충실하게 살았던 장심학의 삶의 모습도 『강해집』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