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가 평안도 평사(評事)가 되었을 때 그곳의 자연풍물을 두루 돌아다녀 보고, 그 아름다움을 노래한 작품으로서 우리나라 기행가사의 효시이다. 작자의 문집 『기봉집(岐峰集)』에 실려 있다. 정철(鄭澈)은 이 작품의 체재와 수사(修辭)를 모방하여 「관동별곡」을 지었으니, 「관서별곡」이 나온 뒤로 25년 이후의 일이다.
여덟 문단으로 되어 있다. 제1문단은 “관서명승지에 왕명으로 보ᄂᆡ실ᄉᆡ”부터 “귀심(歸心)이 ᄲᆞ르거니 고향을 사념ᄒᆞ랴”까지로, 왕명을 받들어 임지로 떠나는 심정을 읊었다.
제2문단은 “생양관(生陽館) 기슭에 버들죠차 프르럿다”까지로, 부임하는 도중의 여러 곳을 노래한 것이다. 벽제와 임진강 · 천수원을 지나서 송경 · 황강 · 구현을 넘어 생양관까지의 노정이 묘사되었다.
제3문단은 “세마태(細馬駄) 홍의(紅衣)예 객흥(客興)이 엇더ᄒᆞ뇨”까지로, 평양의 문화제도와 대동강 · 연광정 · 부벽루 · 능라도 등의 풍경을 읊었다. 제4문단은 “일국 웅관(雄觀)이 팔도ᄋᆡ 위두(爲頭)로다”까지이다. 백상루에 올라서 청천강을 바라보고, 철옹성에서 사방을 내려다보는 경치가 팔도강산에서 으뜸이라고 읊었다.
제5문단은 “이 경(景)도 됴커니와 원려(遠慮)인ᄃᆞᆯ 이즐쇼냐”까지로 나누어진다. 약산동대에 올라가서 자연승경 속에 아름답게 치장한 기생들을 거느리고 풍악을 들으면서 술잔치를 베푸는 즐거움을 읊었다.
제6문단은 “시평무사(時平無事)홈도 성인지화(聖人之化)로다”까지로 볼 수 있다. 지은이가 위엄을 떨치고 일행과 함께 도남을 넘어 배고개[梨峴]와 설한령(雪寒嶺)을 지나서 장백산 근처의 오랑캐마을까지 돌아다녀 보고, 시절이 태평무사함을 읊었다.
제7문단은 “대황(臺隍)은 장려(壯麗)ᄒᆞ야 침이하지교(枕夷夏之交)로다”까지로, 압록강에 배를 띄워놓고 옛날을 생각하며 술잔치를 베풀면서 통군정까지 내려온 것을 읊었다.
제8문단은 마지막 “미구상달천문(未久上達天門)ᄒᆞ리라”까지이다. 서쪽 변방을 살펴보고 본영으로 돌아오니 마치 신선세계에서 놀다 온 것 같으나 어버이를 생각하면 눈물이 흐르고 임금이 그립다고 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