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필사본. 총 37행 74구. 「심진곡(尋眞曲)」과 함께 ‘벽위가(闢衛歌)’라고도 한다. 이 작품은 작자가 서학(西學), 곧 천주교를 금지하는 일에 앞장서다가 1791년(정조 15)함경도 경원(慶源)에 유배되어 3년 동안 귀양살이를 하였는데, 그 무렵에 지었다고 한다.
작자는 이 작품의 제작동기를, 백성과 선비들이 그 마음과 학문을 사사로이 하여 사설(邪說)이 점차 성해가고 있으므로, 그러한 좋지 못한 풍습을 교화시키기 위해서라고 하였다.
내용은 4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단은 서사(緖詞)로서 인생의 고달픔을 말하고 분발하여 구도(求道)의 길을 떠날 것을 노래하였다. 제2단은 도교의 허망함과 불교의 허무함 및 천주교의 배덕(背德)이 괴이한 것임을 노래하였다.
제3단은 해동군자국인 우리 나라를 예찬하면서 이웃과 친척이 화목함이 곧 신선계이며, 현세에서의 즐거움이 곧 천당이라고 노래하였다.
제4단은 결사(結詞)로서 오직 유교만이 참다운 삶의 고향이라고 강조하였다.
이 작품은 새로운 학문과 사상의 도입으로 기존의 유교윤리와 질서가 흔들리는 조선 후기의 사회현실을 안타까워하면서 이를 지키려는 유학자의 강력한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서학에서 주장하는 영혼불멸과 사후 천당지옥설을 냉소적으로 부정하고 유교의 현실윤리만이 진리라고 강조함으로써, 벽위사상(闢衛思想)이 철저하게 표현되어 있는 점이 특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