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서역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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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평안도의 대동역과 어천역의 찰방(察訪)이 각각 만들어 올린 역지를 합편한 관찬서. 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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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895년 평안도의 대동역과 어천역의 찰방(察訪)이 각각 만들어 올린 역지를 합편한 관찬서. 역지.
내용

2책. 필사본. 제1책에는 <대동역사례 大同驛事例>·<어천지 魚川誌>·<어천역사례 魚川驛事例>가 수록되었다. 제2책은 <어천역지 魚川驛誌>인데, 제1책의 <어천지>와 동일한 내용이다.

제1책에 수록된 <대동역사례>는 내제(內題)가 ‘개국오백사년사월일대동역각양응봉응하사례(開國五百四年四月日大同驛各樣應捧應下事例)’로 되어 있다.

이의 내용 구성은 춘등봉상질(春等捧上秩)·추등봉상질(秋等捧上秩)·오읍수미질(五邑收米秩)·하(下)·각참마호수급마필질(各站馬戶首及馬匹秩)·관속질(官屬秩)로 되어 있으며, 끝에 대동역찰방의 수결(手決: 자기의 성명이나 직함 아래에 도장 대신 쓰는 일정한 자형(子形))이 있다.

조선 후기의 전국 9개 간선도로 가운데 한성과 의주를 연결하는 제1로인 의주로(義州路)는 경기도의 영서도(迎曙道), 황해도의 금교도(金郊道), 평안도의 대동도(大同道)의 세 역도(驛道)로 이루어졌다.

대동도는 중화(中和)-평양-순안(順安)-숙천(肅川)-안주-가산(嘉山)-정주(定州)-의주 등 평안도 해안 지역의 주요 읍을 따라 설치된 역도로서, 의주에서는 중국으로 연결되는 중요한 도로였다.

그러나 이 역지에는 대동역의 사례만 기록되어 역의 수입과 지출 등 재정 상태를 파악할 수는 있으나, 역에 대한 자세한 내역은 빠져 있다.

<어천지>는 어천역의 지지이다. 어천도(魚川道)는 평안도 내륙 지방-북서 지방-함경도로 연결되는 역도로서 간선도로가 아닌 지선(支線)이었다. <어천지>에는 역의 연혁으로부터 관원까지 상세히 기록되어 있고, <어천역사례>에는 역의 재정 명세가 실려 있다.

그 내용 구성은 <어천지>의 경우 건치연혁·본역사계(本驛四界)·관원·속역(屬驛)·관군·역마·노비·고공(雇工)·사역(使役)·복결(復結)·위세(位稅)·위전(位田)으로 되어 있다.

<어천역사례>는 관황(官貺)·보역고(補驛庫)·예단고(禮單庫)·우사고(郵司庫)·각반아속(各班衙屬)·각참마총(各站馬摠)·각읍복결(各邑復結)·각읍수미(各邑收米)·각읍고공전(各邑雇工錢)·각읍위전(各邑位田)·본부전세(本府田稅)·본부방하(本府放下)·연준첨가(年準添價)·감포소(減布所)·견요소(蠲徭所)·저리역가(邸吏役價)로 되어 있다. 끝에는 어천도찰방의 수결이 있다.

건치연혁에 이 역이 영변부(寧邊府) 개평방(開平坊)에 위치하고 있어서 이 역의 위치와 명칭이 부합되지 않음을 지적하였다.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을 볼 때 ≪여지승람≫ 편찬 당시인 중종 때에는 어천도의 본역이 어천에 있었으나 그 뒤 개평역으로 이전하였으면서도 관명은 그대로 어천으로 칭하였으며, 따라서 지금은 어천이 속역이 되고 개평이 본역이 되었다고 밝혀 놓았다.

속역에는 어천역·희천관(熙川館) 등 20개 속역의 위치와 본역으로부터의 거리, 역(驛)·관(館)·역졸·관군의 고금(古今) 유무 상태를 표시하여 속역에 대한 파악이 가능하다. <어천역사례>의 보역고·예단고·본부전세·연준첨가·감포소·견요소 등에는 그 비용이 밝혀져 있다.

≪관서역지≫는 1895년 역원제가 폐지되기 직전에 작성된 역지로서 조선 시대 평안도 육로 교통의 내용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역의 규모·관원·마필수·전결·재정 상태, 그 밖에도 원(院)·참(站)에 대해서도 파악할 수 있으나 사례에 치우친 감이 있다. 규장각도서에 있다.

1871년에 편찬된 ≪관서읍지 關西邑誌≫(21책, 규장각도서)에는 역지가 독립되어 있지 않고 각 역이 소속원 읍의 읍지 뒤에 역지가 첨부되어 있어 비교된다.

참고문헌

『관서읍지(關西邑誌)』
『대동지지』
「조선시대의 교통로에 대한 역사지리적연구-한성 의주간을 사례로-」(이혜은, 이화여자대학교석사학위논문,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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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양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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