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에 있는 고인돌로, ‘광주 충효동 성안 고인돌’이라고 하기도 한다. 고인돌은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 담양군의 경계를 이루는 창계천 주변에 형성된 충적 평지에 7기가 동서 방향으로 분포하고 있었다.
광주댐 건설로 인해 1977년 전남대학교박물관에서 7기 중 6기의 고인돌을 발굴 조사하였다. 덮개돌은 현지에 남아 있는데, 광주댐 수위가 높아지면 덮개돌들이 물에 잠겼다.
고인돌의 덮개돌과 돌널의 장축 방향은 모두 동서이다. 덮개돌은 무게가 11~28톤 정도이며, 석질은 화강암과 안산암이어서 인근의 무등산 산록에서 채석한 것으로 추정된다. 6기의 고인돌은 모두 받침돌이 확인되는 남방식이다. 축조 방법은 2호와 7호 고인돌에서 잘 확인할 수 있다.
2호 고인돌의 덮개돌은 평면 타원형이며 크기는 길이 327㎝, 너비 288㎝, 두께 150㎝이고, 무게는 27톤 정도로 광주 충효동 고인돌 중에서 가장 크다. 덮개돌은 60~100㎝ 정도의 받침돌 5개가 원형으로 돌아가면서 받치고 있으며, 받침돌 사이에는 작은 냇돌들이 놓여 있었다. 받침돌 바깥쪽으로는 길이 · 너비 30㎝, 두께 10㎝ 정도의 냇돌들이 너비 100㎝ 정도의 원형으로 깔려 있는데, 동남쪽은 경작으로 인해 파괴되었다.
7호 고인돌의 덮개돌은 평면 타원형이며, 크기는 길이 410㎝, 너비 320㎝, 높이 120㎝이고, 무게는 23톤 정도이다. 덮개돌 아래에서는 깬돌과 냇돌이 장방형으로 깔린 돌무지 부분이 확인되었는데, 규모는 길이 350㎝, 너비 300㎝이다. 받침돌은 4개가 확인된다.
돌널 2기가 나란하게 확인되어서 부부 같은 가까운 혈연관계의 피장자를 합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사례들은 나주판촌리지석묘군, 대구 진천동 고인돌 등에서도 확인되고 있어 고인돌 사회가 혈연관계를 기반으로 한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또한 고인돌 사회를 계급이 발생한 사회로 보기도 한다.
발굴 조사된 6기의 고인돌에서는 민무늬토기 조각, 붉은간토기 조각, 돌살촉, 숫돌 등 30여 점의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토기들은 돌널 안보다는 돌널 주위나 돌무지 사이에서 발견되어서 돌무지를 한 후에 일종의 의례 행위로 토기를 놓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보고자는 고인돌의 형식과 축조 방법, 출토 유물로 보아 연대를 서기전 2세기에서 서기전 1세기로 추정하였지만, 충분한 근거가 있다고 하기는 어려우므로 청동기시대부터 초기 철기시대까지로 폭넓게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