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제강점기 때, 정교, 전리, 경의원 참의 등을 역임한 대종교인.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뒤 정교(正敎)에 이르렀고, 대형(大兄)의 교호(敎號: 대종교 지도자에게 주어지는 호칭)를 받았으며, 총본사(總本司) 전리실(典理室)의 책임자인 전리와 경의원(經議院)의 참의(參議)를 역임하였다.
1942년 11월 일제가 대종교를 탄압하기 위하여 교주를 포함한 간부 25명을 체포하여 그 가운데 10명을 고문 또는 고문후유증으로 사망하게 하고, 교주 윤세복을 무기형에 처하는 등 7명에게 유죄를 선고한 사건인 임오교변(壬午敎變) 때 일본경찰에 잡혔다.
영안현(寧安縣) 경무과, 목단강성(牧丹江省) 경무청과 고등검찰청 등 세 곳을 거치면서 11개월간 갖은 고문과 악형을 당하여 이 때 자살을 기도하기도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1943년 10월 고령을 이유로 면소되어 출옥하였다.
참고문헌
- 『일제하독립운동사연구―만주노령지역을 중심으로―』(박영석, 일조각, 1984)
- 『독립운동사』 8(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 『대종교중광육십년사』(대종교총본사, 1971)
- 『한국독립사』(김승학, 독립문화사,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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