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대사헌, 호조참의, 평양부윤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75년 경상도에 암행어사로 나가 문경현감 정문용(鄭文瑢), 청도군수 권일(權佾), 금산군수 윤이익(尹以益) 등 선치수령(善治守令)에게 표리(表裏: 恩賜나 헌상하는 옷감)를 하사할 것을 진언하였다. 같은 해 홍문록(弘文錄)에 올랐으며 지평 · 헌납을 역임했고, 선비 황식이 소를 올려 추천한 7현(賢) 가운데 한 사람으로 들어갔다.
1676년 9월 현종의 묘정 배향을 변경하는 논의에서 집의로서의 처신을 훌륭히 해냈다. 1679년 판중추부사 허목(許穆)이 영의정 허적(許積)의 아들 허견(許堅)의 불법한 행위를 공격한 사건이 발단이 되어, 청남(淸南) · 탁남(濁南)의 당파 싸움이 벌어졌다. 그때 도승지 민암(閔黯)이 청남인 허목의 당으로 몰아, 아버지는 광주로, 권해는 청도로 귀양갔다. 이듬해 다시 창성으로 이배되었다.
1686년(숙종 12) 또 다시 언양(彦陽)으로 이배되어 이곳에서 『춘추인씨지(春秋人氏志)』를 저술하였다. 1689년 기사환국으로 대사간에 복관되어 대사성 · 강화유수 · 대사헌 · 부제학 · 승지 · 경기도관찰사 · 평안도관찰사를 역임했고, 다시 대사헌 · 형조참의를 거쳐 호조참의에 이르렀다. 1694년 갑술환국 때 창성에 위리안치되었다가, 1697년에 석방되어 예안에서 여생을 보냈다.
문장과 글씨에 뛰어났고, 평양부윤으로 재임할 때는 평안북도 영변의 보현사 영암대사석종비(普賢寺靈巖大師石鐘碑)의 비문을 짓고 썼다. 저서로는 『노론주해(魯論註解)』 · 『사범삼십오편(士範三十五編)』 · 『의경변의(義經辨疑)』 · 『남곡집(南谷集)』 등이 있다.
참고문헌
- 『현종실록(顯宗實錄)』
- 『숙종실록(肅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성호문집(星湖文集)』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
주석
-
주1
: 본관 및 가계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二(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
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二(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
주3
: 경상도 암행어사 행적 : 『숙종실록』 2권, 1675년(숙종 1) 2월 21일. "경상도 암행 어사 권해가 도내를 염문하고 돌아오다"
-
주4
: 남곡집 출처 : 『성호전집(星湖全集)』 권61, 副提學權公墓碣銘.(한국문집총간)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