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통편(大典通編)』과『대전회통(大典會通)』의 예전(禮典) 새보조(璽寶條)에 규장지보는 “어제에 찍어서 표시하는 데 사용한다.”고 하였다.
이 보인은 정조의 명으로 만들었다. 처음에는 어제에만 찍었으나, 1781년(정조 5)부터는 주자소에서 인쇄한 책들을 하사할 때의 내사인(內賜印)으로도 사용하였으며, 1864년 (고종 1)까지 계속되었다.
이 보인은 규장각의 각신(閣臣)이 관장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정조에서 1857년(철종 8) 사이의 갑인자체(甲寅字體) 활자로 인쇄한 책 가운데 이 보인을 찍은 책은 정유자(丁酉字)로 찍은 것이다. 규장지보는 한 변이 12.7㎝인 방형(方形)의 인이나, 9.5㎝의 작은 방형인도 함께 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