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장지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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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정조 대 이후 어제(御製)나 내사본(內賜本)에 찍은 어보(御寶).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윤병태 (충남대학교, 서지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규장지보 미디어 정보

규장지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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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정조 대 이후 어제(御製)나 내사본(內賜本)에 찍은 어보(御寶).

내용

『대전통편(大典通編)』과『대전회통(大典會通)』의 예전(禮典) 새보조(璽寶條)에 규장지보는 “어제에 찍어서 표시하는 데 사용한다.”고 하였다.

이 보인은 정조의 명으로 만들었다. 처음에는 어제에만 찍었으나, 1781년(정조 5)부터는 주자소에서 인쇄한 책들을 하사할 때의 내사인(內賜印)으로도 사용하였으며, 1864년 (고종 1)까지 계속되었다.

이 보인은 규장각의 각신(閣臣)이 관장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정조에서 1857년(철종 8) 사이의 갑인자체(甲寅字體) 활자로 인쇄한 책 가운데 이 보인을 찍은 책은 정유자(丁酉字)로 찍은 것이다. 규장지보는 한 변이 12.7㎝인 방형(方形)의 인이나, 9.5㎝의 작은 방형인도 함께 쓰였다.

참고문헌

  • - 『대전통편(大典通編)』

  • - 『대전회통(大典會通)』

  • - 「내사기(內賜記)와 내사인기(內賜印記)」(윤병태, 『숭의여자전문대학 도서관학연구지』8, 1983)

  • - 「내사기(內賜記)와 선사지기(宣賜之記)에 대(對)하여」(백린, 『국회도서관보(國會圖書館報)』6-8,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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