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791년(정조 15) 기영에서 만든 목활자.
내용
그 취진활자가 어떤 것인지는 실물이 전해지고 있지 않아 자세히 알 수 없으나, 만일 중국의 것이라면 《판당고 板堂考》의 활자조에 기록되어 있는 1790년과 1791년 두 차례에 걸쳐 연경(燕京)으로부터 들어온 목활자였을 가능성이 있다.
활자의 재료에 대하여는 언급이 없으나, 실물을 조사하여 글자획의 굵고 가늠의 차이, 예리한 칼자국, 먹색 등에서 나무활자임을 가늠할 수 있다. 당시 중국의 취진자가 나무활자였으므로 그대로 모방하여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종래에는 이 활자를 ‘기영목활자’라 일컬어왔다. 그러나 평안감영에서는 많은 종류의 활자를 만들어냈기 때문에 그 명칭을 기영필서체목활자라 한다. 이 활자의 인본으로서는 《오산집》 외에 같은 해에 찍어낸 《목민대방 牧民大方》 등 여러 가지가 남아 있다.
참고문헌
- 『정조실록』
- 『한국의 고활자』(손보기, 보진재, 1982)
- 『조선후기의 활자와 책』(윤병태, 범우사, 1992)
- 「기영필서체목활자고」(윤병태, 『도서관학회지』 2, 숭의여자전문대학,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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