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원(李裕元: 1814~1888)은 조선 후기 문신으로,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경춘(景春), 호는 귤산(橘山)이다. 함경도관찰사, 좌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했다.
『귤산문고(橘山文稿)』는 16책의 필사본이다. 표제는 ‘귤산문고(橘山文稿)’이고, 이석영(李石榮)의 인기(印記)가 있다. 별도의 서발문, 필사기 등은 수록되어 있지 않다. 유일본이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필사 시기는 1860년대로 보인다. 15책에 수록되어 있는 부친 이계조(李啓朝)의 지문(誌文)에 있는 교정 표시를 근거로 하면, 대략 1860년대에 필사된 것으로 보인다. 이계조의 지문에 있는 교정 표시에는 1863년(철종 14) 부친이 증시(贈諡)된 사실, 저자 자신이 정승이 되어 부친에게 증직이 내려진 사실, 모친이 1866년(고종 3) 사망한 사실 등이 추가되어 있는 점 등이 그 근거가 된다.
13책은 시, 45책은 「사시향관일록(四時香館日錄)」, 610책은 「천일록(天一錄)」, 6책은 「통의록(通擬錄)」, 7책은 과제(策題), 제록(題錄), 「성사기년(星槎紀年)」, 「정미무신록(丁未戊申錄)」, 89책은 별편(別編), 10책은 소차(疏箚), 11~15책은 계초록(啓草錄), 11책은 상량문, 만장, 제문, 강설, 12책은 「해서록(海西錄)」, 「전최록(殿最錄)」 등, 13책은 「경관록(京關錄)」, 「북관잡록(關北雜錄)」 등, 14책은 「완영계록(完營啓錄)」, 「관감(關甘)」, 15책은 전문(箋文), 기 등, 16책은 「용만기사(龍灣記事)」 등이다.
이 책은 서문과 발문이 실려 있지 않아 누가 언제 편차했는지 불분명하지만, 이유원의 생전에 만들어진 고본(稿本)으로서 다른 필사본 문집인 『가오고략(嘉梧藁略)』보다 이전에 필사된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이 책의 8책에 수록된 「가곡수장고(可谷壽藏攷)」라는 글이 『가오고략』에는 「서수장록후(書壽藏錄後)」라는 이름으로 수록되어 있는데, 이 책의 교정 사항이 『가오고략』에 그대로 반영된 점이 그 근거가 된다.
「사시향관일록」은 출생에서부터 치사할 때까지의 기록이고, 「성사기년」은 동지사의 서장관으로 중국에 갔을 때의 일기이다. 특히 「성사기년」에는 중국 관료들의 우리나라 사신들에 대한 예우, 중국의 인물 · 풍토 · 노정 등을 상세히 기록하여 당시의 양국 관계와 사정을 알 수 있다. 「해서록」 · 「관북잡록」 · 「완영계록」 · 「용만기사」 등은 황해 · 함경 등 지방의 감사로 있을 때 그 지방의 풍속, 토지의 비옥도, 인심, 세금, 민폐 등을 일일이 조사, 기록한 보고서로 사료적 가치가 높다.
『귤산문고』는 이유원의 필사본 시문집이다. 이외에도 필사본 시문집인 『가오고략』과 필기 잡록인 『임하필기(林下筆記)』 등이 전해진다. 『귤산문고』는 대략 1873년까지 지속적으로 교정된 흔적이 있으며, 『가오고략』에 실린 작품들과 대부분 중복되지만, 『귤산문고』에서 이루어진 교정 사항이 『가오고략』에 반영된 사례도 확인된다.
또한 『귤산문고』에는 『가오고략』에는 수록되지 않은 작품들도 포함되어 있는데, 「도봉유기(道峯遊記)」, 「칠모재사실기(七慕齋事實記)」 등 여러 기문(記文)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가오고략』, 『임하필기』와 함께 이유원의 학문과 문학 세계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