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탄유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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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7년(숙종 13)안서우(安瑞羽)가 지은 한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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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687년(숙종 13)안서우(安瑞羽)가 지은 한문소설.
내용

1687년(숙종 13) 안서우(安瑞羽)가 지은 한문소설. 손자 정복(鼎福)의 ≪부부 覆瓿≫ 제26책에 있는 그의 유저(遺著) ≪양기재집 兩棄齋集≫에 들어 있다.

<금강탄유록>의 주인공 김생(金生)은 성격이 방탕하고 신선을 좋아해서 명승절경을 가보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금강산에서 왔다는 도승을 만나게 된다. 그 중은 김생이 신선이 되고 싶어한다는 소문을 듣고 만나보기를 원했다고 말한다. 이에 김생은 신선이 될 수 있게 되었다고 기뼈하며, 금강산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한다.

이 때에 마침 한 동리에 살고 있는 신생(申生)이 회양(淮陽)의 원으로 떠나려 하기에 김생은 도승과의 약속을 이야기하고, 회양에 부임하거든 그 도승을 만나보라고 당부한다. 신생은 부임하자 그 도승을 불러 신선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서로 이야기하고는 김생을 골릴 계획을 세운다. 뒤에 김생이 금강산에 와 신생을 찾아오자, 신생은 “그 중은 이미 신선이 되어 간 곳을 모른다.”고 속인다.

김생은 혼자 도승을 찾아나서서 며칠이 지난 뒤에 백천동(白川洞) 어귀에서 김생을 기다리고 있던 도승을 만난다. 그 도승은 김생을 선계(仙界)로 안내한다고 하며 갖은 곤욕을 치르게 한다. 또한, 속세의 인간으로 신선이 되기 위해서는 삼환(三幻)의 술(術)로 시험받아야 한다고 속인다. 단사(丹砂)물을 뿌려서 김생의 머리·수염 등이 모두 붉게 만든다. 이리하여 환골(幻骨)하여 신선이 되었다고 믿은 김생은 하산하여 집으로 돌아온다.

김생의 얼굴·머리털·피부가 모두 붉어져서 가족들이 알아보지 못할 뿐더러 그를 괴물이라고 쫓아낸다. 선계의 하루는 인간세계의 백년에 해당된다는 말을 믿고 의아해 마지않던 김생은 그제야 자신이 속았음을 깨닫고 울화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금강탄유록>에 나타난 핵심사상은 철저한 신선사상의 부정이다. 신선사상은 고래로 우리 민간에 깊이 침투되어 있었다. 유교를 규범으로 하는 조선조에서는 유가들에 의해 이단으로 배척받기도 하였다. 그러면서도 암암리에 우리의 정신생활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유교를 공부하는 양반층에서까지도 선계를 동경하는 것은 현실이 곤궁할 때 그 불우함을 선계에서 이루어보고자 하는 데서 기인한 것이다.

신선사상은 조선 후기의 몇몇 작가의 작품을 통해서 강력한 배척을 받았다. 대표적인 예로 박지원(朴趾源)의 <김신선전 金神仙傳> 등을 들 수 있다. <금강탄유록>은 <김신선전>보다 70여년 앞서 나왔으면서도 그보다 훨씬 더 강하게 신선의 존재를 부정하였다.

박지원은 신선의 존재를 부정하기 위하여 그 기이한 행적만을 그리는 데 그쳤다. 그러나 안서우는 거짓 신선의 세계와 모욕을 당하는 장면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였다. 그럼으로써 방탕한 자들이 이상향으로 꿈꾸는 선계라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분명히 해주고 있다. 더구나, 신선을 원한다는 한가지 이유 때문에 주인공을 죽게 하는 구성에서 철저히 신선을 부정하고 있다.

<금강탄유록>은 무위도식하며 신선을 구하는 유생에 대하여 준엄한 징벌을 내린 작품이다. 그 과정에서 풍자적 수법을 사용하였다. 또, 모티브가 된 것은 송만재(宋晩載)의 <관우희 觀優戱>와 같은 내용의 <선인견기설화 仙人見欺說話>이다.

신선을 사상의 핵심으로 하고 이를 풍자적인 수법으로 전개시킨 것은 뒤에 나오는 박지원의 작품을 비롯한 조선 후기 한문소설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이들은 이 소설의 영향으로 보인다. <금강탄유록>은 이가원(李家源)의 ≪이조한문소설선 李朝漢文小說選≫에 번역되어 원문과 함께 수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이조한문소설선』(이가원, 민중서관, 1961)
「금강탄유록연구」(이신복, 『국문학논집』 9, 단국대학교,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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