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충청남도 금산군 금성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앞트기식돌방무덤. 횡구식석실분.
개설
내용
벽면 축조상태는 조잡한 편이며, 회를 바르거나 틈을 점토로 메우지도 않았다. 뚜껑돌로 사용한 돌은 크기가 80×45×20㎝ 정도인데 7∼8매를 이어 덮었다. 바닥은 돌을 사용하지 않고 점토를 얇게 깔았을 뿐이다.
유물은 거의 전부가 도굴되고, 단지항아리[土器壺] 1점만이 발굴되었다. 토기는 몸체가 달걀모양에 가까운 둥근 형태이고, 입술은 나팔형으로 약간 벌어졌으며 목은 대단히 짧다. 겉면에는 전혀 문양이 없는 회갈색의 경질토기(硬質土器)인데, 낙동강유역 지방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토기이다. 전체 높이는 41.6㎝, 입지름은 23.6㎝이다.
의의와 평가
그리고 상가리고분에서 출토된 단지항아리는 백제양식의 토기로서 경산 북서동고분에서 발견된 단지항아리와 창녕 계남리고분 발견 단지항아리, 달성군 달서면 제50호분에서 발견된 항아리 등과도 근본적으로 그릇모양[器形]을 같이하고 있어서 이들 낙동강유역 가야지역의 토기와 금강유역 백제토기와의 영향관계를 연결짓는 중간지점의 토기로 보인다.
역사적으로 금산지역은 영동, 옥천 등지와 함께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대로서 그 소속이 자주 변하는 지역으로 인식돼 왔는데 이번 금산에서 발견된 돌방무덤과 토기로써 본다면 신라적인 요소는 거의 없고 오히려 가야적 요소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에서 금산 상가리의 고분과 토기가 갖는 의의는 자못 크다. 아울러 본 고분의 조성연대는 가야에서 앞트기식 돌방무덤이 성행한 서기 5세기 후반 이후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 『백제고분 발굴이야기』(조유전, 주류성, 2005)
- 『백제의 고분문화』(이남석, 서경, 2002)
- 『고분연구』(강인구, 학연문화사, 2000)
- 「금산의 고분과 토기류」(강인구,『백제고분연구』, 일지사, 1977)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