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914년 평양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내용
총무는 김영윤, 고문은 진명학교 교사 차리석(車利錫)이었으며, 단원은 대부분 대성학교·평양고등보통학교·평양농학교·사립일신학교(私立日新學校)·휘문의숙(徽文義塾) 등을 졸업하거나 수료하고 평양에 살고 있던 20대 청년들이었다.
김영윤 등이 먼저 서간도로 건너가 신흥학교에 입학하였으며, 나머지 단원들도 그 기회를 기다리던 중 1914년말 일본경찰에 활동내용이 알려져 전 기명학교(箕明學校) 교사 김찬종(金燦鍾)·강원섭(康元燮)·김봉기(金鳳基) 등 3명의 단원이 붙잡혔으며, 이후 조직은 와해된 것으로 보인다.
1910년대 국내 독립운동의 한 특징은 독립전쟁론에 입각하여 설립된 해외의 독립군 무관학교에 청년들을 입학시키는 것이었는데, 이 단체는 이같은 특징을 지닌 대표적인 단체이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 5(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69)
- 「3·1운동(運動)에 이르는 민족독립운동(民族獨立運動)의 원류(源流)」(최영희, 『한국근대사론(韓國近代史論)』 Ⅱ, 지식산업사, 1977)
- 『현대사자료(現代史資料)』 25(姜德相 編, みすず書房, 1967)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