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 5월 김영윤(金永胤)이 동지들과 함께, 독립군 장교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된 서간도(西間島)의 신흥학교(新興學校)와 미국에 있는 네블라스카소년학교에 청년들을 입학시키기 위하여 조직하였는데, 겉으로는 야구운동단체임을 표방하고, 단원들을 이전의 평양 대성학교 운동장에 모아 야구연습을 시켰다.
총무는 김영윤, 고문은 진명학교 교사 차리석(車利錫)이었으며, 단원은 대부분 대성학교·평양고등보통학교·평양농학교·사립일신학교(私立日新學校)·휘문의숙(徽文義塾) 등을 졸업하거나 수료하고 평양에 살고 있던 20대 청년들이었다.
김영윤 등이 먼저 서간도로 건너가 신흥학교에 입학하였으며, 나머지 단원들도 그 기회를 기다리던 중 1914년말 일본경찰에 활동내용이 알려져 전 기명학교(箕明學校) 교사 김찬종(金燦鍾)·강원섭(康元燮)·김봉기(金鳳基) 등 3명의 단원이 붙잡혔으며, 이후 조직은 와해된 것으로 보인다.
1910년대 국내 독립운동의 한 특징은 독립전쟁론에 입각하여 설립된 해외의 독립군 무관학교에 청년들을 입학시키는 것이었는데, 이 단체는 이같은 특징을 지닌 대표적인 단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