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신도량(諱辰道場)’이라고도 한다. '기신'은 죽은 이의 기일에 불교의 계법(戒法)을 엄격하게 지키고 나쁜 일을 금하며 바른 일을 하여 청정한 공양을 올리는 제사를 여는 것이다. 신라ㆍ고려ㆍ조선 초기까지 행하여졌으며, 특히 고려시대에 성행하였다. 고려왕실에서는 성종 때부터 이 도량을 열었다. 당나라 태종이 부모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매년 기월(忌月)에 소를 잡는 것을 금하게 하고, 전국 각 사원에서 5일간에 걸쳐 불공을 올린 일을 성종이 본뜬 것이다.
성종은 부군 대종(戴宗)과 모후 선의왕후(宣義王后)의 기일을 맞이하여 각각 5일과 3일 동안 사찰에서 불공을 올렸으며, 그들 기월에는 1개월 동안 도살을 금하였다. 성종의 뒤를 이은 제7대 목종 때에도 부왕 경종을 위한 휘신도량이 5일 동안에 걸쳐서 열렸을 뿐만 아니라, 혜종ㆍ정종ㆍ광종ㆍ대종의 휘신도량이 각각 1일씩 있었다.
특히, 왕조의 개창자인 태조의 휘신도량은 성종 때부터 매년 6월에 열렸으며, 제9대 덕종과 제10대 정종도 6월에 태조의 휘신도량을 각각 봉은사와 개국사(開國寺)에서 열었다. 봉은사는 광종이 태조의 원당(願堂)으로 세웠던 사원이었으므로, 거기에서 태조의 휘신도량을 열었다는 것은 매우 의의 깊은 일이다.
덕종은 부군 현종을 위한 기신도량을 매년 5월에 현화사(玄化寺)에서 열었는데, 형제였던 문종 또한 기월인 5월에 현화사에서 휘신도량을 열어 현종의 명복을 기원하였다. 숙종은 매년 7월에 부군 문종의 휘신도량을 흥왕사(興王寺)에서 열었으며, 9월에는 모후인 인예태후의 휘신도량을 국청사(國淸寺)에서 열었다.
예종은 매년 10월에 숙종을 위한 기신도량을 열었으며, 인종 또한 4월에 예종의 휘신도량을 여는 등 고려왕실의 휘신도량은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다. 축수도량(祝壽道場) 때처럼 휘신도량 때에도 반승(飯僧)이 함께 베풀어졌는데, 1225년(고종 12) 강종의 휘신도량 때 200명의 승려들을 대궐로 초대하여 음식을 대접한 것이 반승의 한 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