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전해

  • 역사
  • 인물
  • 삼국
삼국시대 때, 가야연맹 반피국의 상수위를 역임한 귀족.
이칭
  • 이칭고전해(古殿奚)
인물/전통 인물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상수위(上首位)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도학 (한양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4년 05월 21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삼국시대 때, 가야연맹 반피국의 상수위를 역임한 귀족.

내용

고전해(古殿奚)라고도 한다. 반피국이 백제의 기문(己汶 : 지금의 전북특별자치도 南原 )지역을 공격하여 점령하자, 513년(무령왕 13) 6월에 백제는 장군 저미문귀(姐彌文貴) 등을 왜(倭)에 보내 기문지역의 영유권문제에 대한 중재를 요청했다.

그리하여 같은 해 11월 백제가 반환을 제기한 기문과 대사(帶沙 혹은 滯沙 : 지금의 경상남도 河東)지역의 영유권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당사국인 반피국을 대표해서 백제 · 신라 · 안라(安羅) 등의 사신과 함께 왜의 왕정(王廷)에 참석하였다.

이같은 섬진강유역을 둘러싼 영유권분쟁은 반피국이 실력대결에서 백제에게 패함에 따라 백제의 소유로 귀결되었다. 그 뒤 신라의 낙동강유역 진출이 본격화됨에 따라, 가야연맹이 붕괴일로에 놓이게 된 541년(성왕 11) 4월에 그는 상수위(上首位)의 관직으로 반피국을 대표하여 백제에 파견되었다.

이때 백제 성왕은 안라를 비롯한 가야연맹의 수장층들과 함께 가야연맹재건회의를 주재하였다. 544년 11월에도 안라의 하한기(下旱岐)를 비롯한 가야연맹의 수장층들과 함께 백제에서 가야연맹의 재건문제를 논의하였다.

그는 가야연맹과 연고가 깊은 백제의 힘을 빌려 신라의 세력확대를 막으려는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다.

참고문헌

  • - 『일본서기(日本書紀)』

  • - 『가양연맹사(加耶聯盟史)』(김태식, 일주각, 1993)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