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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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갑신정변, 한성조약 등과 관련된 의사(義士).
인물/근현대 인물
  • 관련 사건갑신정변|한성조약
  • 사망 연도1884년(고종 21)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63년(철종 14)
  • 출생지충청남도 천안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강진갑 (한양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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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개항기 갑신정변, 한성조약 등과 관련된 의사(義士).

생애 및 활동사항

충청남도 천안 출신. 1884년 10월 초 같은 군에 사는 유기상인(鍮器商人)을 따라 서울에 와서 남문 밖 객점에 머물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같은 달 18일에 전날 갑신정변이 일어나 정변의 주도세력들이 일본군과 함께 궁궐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정변의 주도세력들을 죽이고자 하였으나 궁궐에 접근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지방사정을 탐지하고 서울로 돌아오던 이소바야시[磯林眞三]와 일행인 일본군 참모본부 어학생(語學生) 아카바네[赤羽平太郎] 등이 서울 교외 청파 갈오리(葛五里)마을 앞에 이르렀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래서 같은 달 20일 아침 청파로 가서 마을사람들과 통행인들을 모아 함께 이소바야시 일행에게 돌을 던지고는 칼로 찔러 죽인 뒤, 황해도 금천으로 피신하였다.

같은 해 11월 24일 갑신정변 뒷처리를 위하여 우리 나라와 일본간에 한성조약이 체결되었는데, 조약 3조 및 별단(別單)에는 조약체결일로부터 20일 이내, 즉 12월 14일까지 이소바야시를 살해한 사람을 체포, 처형하기로 규정되어 있었다.

그에 따라 좌우포도청이 살해한 사람을 찾고 있던 때인 12월 6일에 황해도로부터 돌아와 서울 남문 밖에서 포교에게 체포되어, 같은 달 14일 일본공사관원 입회하에 이소바야시 살해수범(殺害首犯)으로 지목된 땔나무장수 원한갑(元漢甲)과 함께 효수형을 당하였다.

참고문헌

  •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 『한국사』-최근세편-(이선근, 을유문화사, 1961)

  • - 『김옥균전』 상(고균기념회 편, 경응출판사, 1944)

  • - 『日韓外交資料集成』 7(金正明 編, 巖南堂書店, 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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